[문학예술]'그 매듭은…' 아내… 딸… 엄마… 내가 설 자리는

  • 입력 2003년 12월 5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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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듭은 누가 풀까/이경자 지음/334쪽 9000원 실천문학사

소설가 이경자씨(55)가 장편 ‘사랑과 상처’ 이후 4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 소설집 ‘절반의 실패’, 장편 ‘혼자 눈뜨는 아침’ 등에서 여성의 운명과 심리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인간관계를 둘러싼 여성의 문제를 파고든다.

‘괜찮아. 춤추며 살지 뭐. 행복 같은 거, 나한텐 쑥스러워.’

소설의 주인공인 30대 후반의 무용가 손하영은 아내와 엄마, 딸 어느 자리에서도 자신을 찾을 수 없다. 주변사람들과의 일상적인 관계는 온통 매듭이 져 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대화는 사라지고, 두 딸은 춤추는 데만 빠져 있는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울한 날, 이따금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지만 번번이 불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기 일쑤. 하영은 삶의 결핍을 춤,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의 사랑으로 채워 보려 하나 공허하기만 하다.

하영의 어린시절 기억에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력한 어머니가 존재한다. 어머니는 남동생만 데리고 몸을 피하고, 술 취한 아버지는 딸에게 위로받고 싶어 한다. 하영은 권력자인 아버지를 내면에 받아들이는 대신 어머니를 멸시한다.

한편 하영은 서사무가(敍事巫歌) ‘청천각시’를 무용작품으로 연출해 무대에 올리려 한다. 함경도 지방의 무가인 ‘도랑선비 청천각시’를 원작으로 한 이 서사무가는 사자(死者)의 영혼을 위해 저승길을 닦아 주는 굿으로, 혼인 첫날밤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진 신랑 도랑선비를 찾아가는 청천각시의 고행을 담고 있다.

‘청천각시’는 남자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는 여성의 고통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청천각시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도랑선비를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영은 맨손으로 험산의 돌부리를 캐내며 저승길을 닦아가는 청천각시의 역정에서 자신을 본다.

이씨는 소설 서두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손하영의 죄는 자신의 마음을 속이기보다 아주 도망시킨 데 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에게 지은 죄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자신을 용서하며 마침내 자신과 화해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쓰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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