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관영/부동산 실수요자 피해 막아야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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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투기를 원천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던 부동산종합대책을 마침내 29일 발표했다. 5·23 및 9·5조치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이다.

이번 10·29대책의 주요 내용은 서울 강남 이외 지역의 주택 공급 확충, 주택자금의 투기화 방지, 유동자금의 증시 유도, 부동산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등 이전에 나왔던 정책들과 비교해 다소 강화된 것이기는 하지만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앞으로 투기지역에 도입키로 한 주택거래허가제의 일정을 제시한 것 정도가 유일하게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 보유세 인상 결국 서민에게 부담 ▼

예고돼 왔던 조치인 만큼 이번 대책의 효과는 이미 상당부분 시장에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앞으로 부동산시장이 안정 국면에 진입한다 해도 이는 이번 대책 때문이 아니라 주택시장이 이미 비수기로 들어서는 등 시장상황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이야 어떻든 매번 그래왔듯이 이번 대책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주택시장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문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처럼 이번 대책이 주택시장의 실수요자들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건설경기는 물론 전체 내수경기를 위축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다. 주택 투기자금을 막는 것은 좋으나 실수요 자금이나 건전한 투자자금까지 막는 것은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정책은 투기꾼이든 실수요자든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보유세 인상이 문제인데,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안해준다고 하지만 앞으로 주택 재산세 과표는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광범위한 지역이 투기지역으로 묶일 것이 분명한 수도권의 경우 세금 압박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주택 보유자 모두에게 지금보다 많은 세금이 부과될 경우 결국 집값 상승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리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칙이다. 그리고 그 금액이 얼마가 됐든 가장 큰 부담을 느낄 사람은 서민층이다. 강남 집값 잡으려다 세금만 많이 내게 됐다는 불평이 변두리 지역에서부터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주택담보비율의 하향 조정이나 주택거래허가제 도입, 투기지역 내 양도세의 실거래가 적용 등은 주택시장의 동결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실수요 거래까지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간의 부동산대책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은 시장을 무시한 정책으로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 저금리, 주식시장의 불안정성 등 부동산에 대한 투자 수요는 충분하다. 적절한 투자처가 없는데도 정부는 이를 외면한 채 투기 수요만 잠재우면 된다는 식으로 오기를 부려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서민층과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주택 거래를 허가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어느 나라건 집값이 비싼 지역과 싼 지역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 나라에서 비싼 지역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사례는 본 일이 없다. 강남 지역에 대한 수요 억제를 통해 강남 집값, 나아가 전체 부동산가격 상승세를 잡을 수 있다는 발상은 재고해야 한다. 시장의 수요 공급에 따라 집값이 오르면 공급을 늘리고 수요를 진정시키는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펴야 한다.

▼ 제초제 남용 잔디밭 다 죽이는 셈 ▼

부동산은 주식이나 채권 등과 마찬가지로 투자 대상이 되는 중요한 자산 중의 하나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목돈이 생기면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7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잔디밭의 잡초를 없앤다고 점점 강한 제초제를 뿌리면 그 잔디밭 자체가 죽어버릴 것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투기를 막는다고 ‘제초제’라는 극약처방을 남발하면 선량한 ‘잔디’까지 죽어버린다. 건전한 투자 수요를 제도적으로 육성하면서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부동산 햇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관영 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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