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이종하/‘도도한’ 목 자세 디스크 줄인다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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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때 영화 ‘전쟁과 평화’를 본 적이 있다. 프랑스 기마대의 돌격, 불타는 모스크바 등이 아직도 눈에 선하지만 당시 내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 것은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었다. 짙은 눈썹, 까만 눈동자, 아담한 얼굴, 마른 몸과 잘 조화된 검은 드레스…. 그러나 요즘 나는 재활의학 의사로서 헵번의 우아한 비밀을 새로이 발견한다. 그것은 그녀의 곧은 목이다. 어느 사진을 보아도 그녀의 목은 백조처럼 우아하고 곧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한 여성 출연자의 목을 X선 촬영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턱은 목뼈에 연접해 있었고 경추에서 정상적인 만곡은 사라졌으며 앞으로 굽어 있었다. 그녀는 높은 베개를 베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목운동을 시켜본 결과 목을 신전(뒤로 펴는 것)하는 것을 어색해 했다. 나는 그녀에게 베개를 점차 낮게 베고, 목 운동을 하도록 권했다.

외래를 방문한 한 대학생은 목이 아플 뿐 아니라 손까지 저리다고 했다. 이 학생도 목을 심하게 앞으로 굽힌 자세였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경추 3,4번 디스크가 심하게 돌출돼 있었다. 공부할 때는 무조건 목칼라(토마스 칼라)를 차게 하고, 평소에는 도도하게 목을 들고 다니게 하기를 두 달, X선을 다시 찍었더니 놀랍게도 척추가 아름다운 정상곡선을 회복해 있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머리 조아리는 것을 좋은 습관으로 여겼던 듯하다. 신하는 임금 앞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직장인은 종일 책상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주부들은 싱크대 앞에서 아래만 쳐다보고 일한다. 그러나 이제는 건강을 위해 목을 펴야 할 때다.

자세가 나쁜 환자의 MRI 진단 결과를 보면 나이에 관계없이 디스크 변성이나 디스크 탈출로 인한 신경압박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뒷목, 어깨, 양 견갑골 사이에 심한 통증과 불쾌감을 호소한다. 환자에 따라 눈이 침침해지기도 하며 불면증, 신경질이 생기고 전신 피로와 의욕저하를 느낀다. 이런 환자는 근골격계 질환을 가진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근막통 증후군, 디스크 돌출증, 경추 신경근증, 후관절 증후군, 척수병증, 긴장성 두통, 턱관절 증후군…. 직장인들이 많이 호소하는 모니터 증후군도 이런 질환의 아류다.

그럼 이런 질환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첫째, 목 상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인체의 적응력 탓에 같은 원인에도 다양한 증상이 있어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다. 부적절한 목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둘째는 자기관리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선 목을 들고 가슴을 편 자세에 익숙해져야 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옛 자세로 돌아가므로 주위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직업상 목을 숙일 때가 많다면 목칼라를 구입해 일할 때 착용하는 것도 좋다. 목운동도 중요하다.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양팔을 머리 위로 뻗어 스트레칭하고, 한손으로 머리를 잡고 목을 신전, 좌회전, 우회전시키되 목에 약간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천천히 부드럽게 한다. 스트레칭은 목에 불편감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아프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목을 곧게 하려 애쓴다면 이 또한 너무 재미없는 일 아닌가? 이 가을에 옛 스타를 생각하며 목을 곧게 하고 가슴을 펴보자. 그리고 우아하게 가을에 흠뻑 젖어보자.

이종하 경희의료원 교수·재활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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