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금감위 ´조흥銀 징계´ 발빼기

  • 입력 2002년 12월 30일 18시 10분


“몇몇 국회의원들이 전화로 문제 제기를 하기는 했습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27일 당초 예정된 조흥은행 등 일부 은행에 대한 징계를 느닷없이 보류시켰다. 당연히 ‘로비 의혹’이 터져나왔고 한 고위 간부는 ‘외부(국회) 입김’이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시인했다.

사태의 발단은 이렇다.

금감위는 9월에 적발된 부산지역 무역금융 사기사건에 연루된 조흥·우리은행 등 관련은행들의 검사 결과 및 징계조치를 27일 발표하기로 한 달 전 예고했다.

이번 건은 한 무역회사가 수출입 관련서류를 위조해 14년 동안 조흥은행 등 6개 은행으로부터 불법으로 1137억원을 지원 받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27일 회의에서 관련 은행들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감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마친 뒤 “은행을 기관경고한다고 해서 문제 서류에 직접 서명하지도 않은 위성복(魏聖復) 당시 조흥은행장 등 간부들을 연계해 처벌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보류 이유를 설명했다.

금감위의 해명에는 일리가 있다. ‘기관문책시 기관장 자동처벌’ 규정은 오래 전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돼 온 사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감위의 집행기관인 금융감독원조차 “납득이 안 된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문제가 될 만한 규정인줄 뻔히 알면서도 20여년간 이 규정을 적용하다가 ‘정권 실세와 가깝다고 알려진 특정인’이 대상이 되니까 갑자기 금감위 스스로 나서서 규정 적용을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규정은 사람을 보아가며 적용해서는 안 된다. 금감위가 관련 규정의 문제점을 이제야 인식했다면 앞으로 이 규정을 개정하면 된다. 그러나 이미 이뤄진 일에 대해서는 당시의 규정대로 처리하는 것이 정상적인 대응이다.

국회의원들이 전화로 어떤 압력이나 부탁을 했는지 기자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과거부터 문제가 있었던 규정을 뒤늦게 거론하며 적용하지 않으려는 배경이 특정인을 봐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김동원기자 경제부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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