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영이/일본의 ´실패연구´

  • 입력 2002년 4월 23일 18시 19분


얼마전 도쿄(東京) 니혼바시(日本橋)에 있는 일본삼성 사무실에 이우에 사토시(井植敏) 산요전기 회장이 방문했다. “한번 직접 보고 싶어서…”라며 불쑥 찾아온 산요의 최고경영자를 맞이하면서 삼성 직원들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 일본 업체들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야했던 게 몇 번이던가…. 새삼 높아진 위상을 실감했다.

D램 반도체에 이어 액정표시장치(LCD)에서도 약진하고 있는 삼성의 성공 스토리는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소니나 샤프 등 경쟁사들은 벌써 경계의 빛이 역력하다.

삼성뿐만 아니다. 한국경제 자체가 주목의 대상이다. 아사히신문 등 주요 언론들은 한국이 어떻게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회복을 이뤘는가를 잇따라 대서특필하고 있다. 어떤 잡지는 아예 대놓고 한국을 배우라고 충고한다. 10년이 넘는 장기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활력이 무척이나 부러운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으로서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일본 경제가 계속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내심 ‘일본도 별것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업 내부에서도 일본통들이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대신 미국통들은 신이 나 있다. 경영전략을 짤 때 일본 사례를 들고 나오면 “별 도움이 안될 텐데”라는 반응을 얻기 일쑤라고 한국의 한 대기업 임원은 털어놓았다. 해외근무 희망자 사이에도 도쿄는 이제 별로다.

그렇다면 일본은 이제 끝난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에선 요즘 ‘실패연구’가 한창이다. 실패의 원인을 밝혀내 문제의 해답을 찾자는 것이다. 산요전기 회장의 일본삼성 방문도 크게 보면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이 한국경제의 교과서였다면 일본의 ‘실패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작지 않다. 성공과 실패는 수시로 자리를 바꿀 뿐이다. 잠깐의 호전에 취하기보다는 잘 나갈 때 우리도 ‘실패연구’를 할 수 있는 그런 전략적 안목과 겸허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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