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르네상스 미술의 잔칫상 '도상해석학 연구'

  • 입력 2002년 3월 1일 17시 49분


도상해석학 연구/에르빈 파노프스키 지음 이한순 옮김/536쪽 2만5000원 시공사

파노프스키는 미술사학의 아버지뻘 되는 인물이다. 비극으로 치면 소포클레스, 철학으로 치면 소크라테스에 필적한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니까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미술에 대해 그가 쓴 100여 종의 논문은 지금껏 인문학의 하늘에 은하수처럼 흐른다. 이 책은 이 가운데서도 알짜배기 성운들만 추렸다. 첫 장의 도상학 방법론을 비롯해 모두 다섯 편의 논문은 고대의 은성(殷盛)한 유산이 중세의 블랙홀을 거쳐 르네상스 시대에 새로운 별자리로 부활하는 세기의 우주쇼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 마디로 눈부신 역작이다.

몇 해 전 그의 방법론 논문들이 다른 글과 함께 옮겨진 적은 있지만, 순도 100%인 그의 저작이 마침내 처음 우리말로 나왔다는 사실은 새삼스런 감회가 아닐 수 없다. 옮긴이도 거의 4년 넘게 붙들고 늘어져 마침내 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됐다니, 그 고집도 보통 질긴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이 나오면 덮어놓고 축하를 해야 한다.

다만 몇 가지 옥의 티가 눈에 밟히니 에라, 욕먹을 각오하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번역글이 너무 어렵다. 독자 수준을 높게 잡은 탓인지 시쳇말로 ‘골 부수는’ 문체들로 밀어붙였다. 예컨대 328쪽 “그러나 그러한 자유는 힐데브란트가 부조 바라보기의 원리라 일컬었던 것에 의해 억제된다.” 뭐, 이런 식이다. 이걸 “힐데브란트 말마따나 부조 새기듯이 그림을 그려서야 제대로 될 리 없다”라고 했더라면 누구라도 단박에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건 꼭 역자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모두가 옷깃을 여미고 반성해야 한다.

문체말고도 거슬리는 오역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가령 46∼47쪽에 ‘헤라클레스의 호랑이 가죽’과 ‘다비드 앞에 선 예언녀 나탄’은 좀 너무했다.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숫사자를 때려잡고 가죽옷을 지어 입은 건 요즘 초등학생도 다 아는 상식이다. 호랑이와 사자가 똑같이 무서운 맹수라서 잠깐 착각했나 보다. 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에게 조언역을 맡았던 예언자 나탄은 언제 성전환을 한 걸까? 역자는 틀림없이 레싱의 희곡을 못 읽어본 모양이다.

이런 대목을 다 늘어놓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그뿐일까? 체코 미술사학자 톨노이를 톨네라고 프랑스식으로 부른 거야 애교로 봐준다 쳐도, 폴란드 미술사학자 스취외고브스키를 스트르지고브스키라고 붙인 건 좀 심했다. 억지로 발음하다 혀가 꼬이면 누구한테 책임을 묻나?

이런 오류는 사실 어떤 책에나 으레 나오는 수준이니까 그냥 학문적 기초공사의 부실에 따른 미필적 고의로 눈감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첫 장 번역이다. 이 부분은 이미 우리말 번역이 책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남의 번역을 슬쩍 훔쳐보고는 해명이 없다. 수정 번역을 하려면 기존 번역의 치명적 오류를 지적하든지, 최소한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옳지 않을까?

또 출판사도 문제다. 이 책에는 저작권 계약 부분이 안 보인다. 파노프스키가 1968년에 죽었으니까 저작권이 출판사나 가족한테 시퍼렇게 살아있을 텐데, ‘설마 누가 시비 안 걸겠지’ 하고 책부터 내고 본 모양이다. 출판사도 나름대로 저작권 문제 해결을 위해 애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그런 사정을 책에 명시해 놨어야 한다. 이런 최소한의 예의나 형식마저 무시하는 출판계의 고질병은 언제쯤 고쳐질까?

노성두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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