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첫 순방지인 모스크바에서 후 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가며 90분에 걸쳐 테러리즘과 아프가니스탄 사태, 양국 현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이 후 부주석을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과 똑같이 대우해 준 것.
국빈 대접은 런던에서도 이어졌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29일 다우닝가 총리 관저에서 그를 만나 대(對)테러 전쟁과 아프간 사태, 탈레반 이후 정부 전망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뒤 중국의 협조를 당부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례적으로 정상이 아닌 그에게 단독 알현 기회를 줬다.
유럽 각국이 그를 환대한 것은 그가 권력서열은 5위지만 1년 뒤면 장 주석 자리를 물려받아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될 예정이기 때문. 80년 중앙정치무대에 등장한 그는 12년 만에 최연소(49세)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고 이어 98년 국가 부주석에 오르면서부터 권력승계를 준비해 왔다. 이 과정에서 군부에 대한 영향력도 키웠다. 올 8월 베이다이허에서 열린 중국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그는 차기 주석으로 내정됐다.
후 부주석이 정상 대접을 받은 데에는 그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는 점도 한몫 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어했고, 외국 나들이를 거의 하지 않는 그를 만난 김에 관계를 확실히 다져 놓으려고 했기 때문.
후 부주석은 권력을 키워가면서도 자신의 철학과 노선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올 4월 중국 연안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의 정찰기와 중국의 전투기가 충돌했을 때 외국 출장 중이었던 장 주석을 대신해 단호한 대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