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쌀의 인류학

  • 입력 2001년 4월 27일 19시 21분


◇쌀은 언제부터 일본ㅇ니 주식이었나?

쌀의 인류학

오누키 에미코(大貫惠美子) 지음, 박동성 옮김

312쪽, 6000원, 소화

“쌀은 일본인의 또 다른 얼굴.” 똑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으로서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당당하게 ‘쌀’을 일본인에 대한 문화적 ‘은유’로 내세우며 일본인과 쌀을 하나의 역사를 하나로 묶어낸 이 책을 보면 부러움을 숨기기 어렵다.

쌀 생산량으로 볼 때 한국이나 일본은 두 나라를 모두 합쳐도 전 세계 쌀 생산량의 5%도 안된다. 사실 식량 소비에서 쌀의 비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도 우리나 일본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주식은 여전히 ‘쌀’이다.

미국 위스콘신대 인류학부 교수인 저자는 일본인이 쌀과 맺어온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쌀은 본래 일본인의 주식이 아니었다. 상류층만의 주식, 또는 의례용 음식이었던 쌀이 일본인의 주식이 된 것은 식량배급제가 실시된 1939년 이후라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쌀 문화는 지방호족과 상류계층의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변하게 된다.

그럼에도 쌀은 오래 전부터 신들에게 바치는 공물로서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고, 일반 일본인 사이에서도 극히 높은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지니는 부의 상징으로 사용돼 왔다.

쌀은 청결하고 순수하고 신선한 돈이었다. 쌀은 일본인의 것이어야 했고, 따라서 쌀의 경우는 수출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수입자유화의 마지막 저항선 역시 ‘쌀’이었다.

서양인의 육식에 대해 일본인은 미식(米食)을 자부했고, 중국의 장립미(長粒米)에 대해서는 일본의 단립미(短粒米)를 내세웠다. 쌀은 일본인의 삶 속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고, 일본인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 돼 왔다.

벼농사가 이뤄지는 논으로부터 가정주부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주걱까지,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쌀 이야기부터 전기밥솥까지. 종횡무진 누비는 일본인의 쌀 이야기는 쌀이 여전히 일본 문화의 대표적 상징임을 확인해 준다.

우리의 쌀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대신 일본의 쌀을 통해 우리 문화를 비추어볼 수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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