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박종환 “여자축구 성공시켜 한 풀겠다”

  • 입력 2001년 4월 23일 18시 50분


박종환 단장
박종환 단장
“호칭이요? 감독이지요. 당연한거 아니예요. 회사에서는 물론 단장이니까 단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그냥 감독이라고 불러주는게 제일 반갑더라고요. 친근감도 있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감독직을 맡아 살아온거니까 그거 버리기 싫고, 그게 내 소망이고 바램이고…”

18일 여왕기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울산에 온 박종환 감독(65)과 참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회장’(한국여성축구연맹 회장)과 ‘단장’(숭민원더스 여자축구단) 중 어느 쪽 호칭이 편하냐고 묻자 정색을 하며 ‘감독’이라고 부르란다.

그래서 였을까. 울산 서부구장에서 처음 만났을때 ‘회장님’이라고 부르자 그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이제 이순의 나이를 훌쩍 넘긴 박종환 감독. 그 만큼 우리 축구사에 ‘화끈한’ 이름을 남긴 지도자가가 또 있을까. 냉혹하리만큼 차가우면서도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했던 그라운드의 냉혈 승부사.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4강 신화를 달성했으면서도 이후 대표팀과는 악연이 그치지 않았던 ‘비운’의 인물. 프로축구 일화에서 사상 초유의 정규리그 3연패를 이루고도 심판에 대한 폭력과 징계로 바람 잘 날 없었던 ‘풍운아’.

96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열린 아시안컵대회 이란전 참패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그가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99년 여자축구팀 창단에 뛰어들면서부터였다.

‘박종환과 여자축구’. 그를 아는 사람에게는 어색하기 이를데 없는 조합이다.

“해보니까 재미있어요. 재미있다는 건 보람을 느끼니까….여자축구로 돌았으니까 남은 인생을 남자축구보다 더 빨리 월드컵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내가 만들고서 떠나겠다는 거지요. 일단 2003년 중국 여자월드컵이 목표입니다.”

박감독은 호적상 1938년생이지만 실제론 이보다 2년 앞선 1936년생으로 손녀를 셋이나 본 할아버지다. 그러나 축구와 미래, 꿈을 얘기할때는 목소리가 자꾸만 올라가고 강렬한 눈빛은 불타는 듯 하다. 특유의 거침없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그대로다

그가 황혼에 접어든 나이에도 이런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맺힌 한’ 때문일까?. 물론 박감독은 옛 얘기가 나올때마다 때론 답답하고 때론 억울했던 당시 심정을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여자 축구는?.

“누구보다 삶의 욕심이 강한 것은 내가 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봐요. 박종환이도 소인이지만 축구인으로서는 욕심이 많기 때문에 일을 다 못다하고 갈때는 눈을 감고 죽을 수가 없을거 아네요. 그래서 이젠 뭐냐. 다 체념하고 여자 축구에 몸을 담아 죽을때까지 힘에 닿는 한 노력해 꼭 성공을 시켜놓으면 한이 풀릴거 같아요.”

박감독은 ‘한’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건 ‘외길 인생’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나는 축구로만 살아왔고 34년동안 지도자생활을 해왔어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리 고향에서 뭐 국회의원 나와라 하는데 나한테 맞지 않는 얘기고. 축구인이 축구를 해야 맞고 못다 했던 제자 키우는게 좋은거 거든요”

저녁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기자 박감독이 맥주잔 3분의1 가량에 소주를 부은 뒤 나머지를 맥주로 채운 잔을 돌렸다. “경기땐 술을 절대 입에 대지 않아요. 우리 선수들 내가 술 못 먹는줄 알아요. 과거에도 마찬가지고. 지도자는 세상 없어도 선수들한테 어떠한 약점도 잡히면 안되는 거지요. 선수는 술 못먹게 하고 내가 나가 술먹는 꼴을 보여주면 안돼요. 담배도 마찬가지예요”

몇 순배 잔이 돌았지만 박감독의 모습엔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술은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듯 했다.

“나이를 먹고 기가 떨어지면 사람이 달라질수가 있어요. 그런데 난 아직 기가 떨어지거나 달라진건 없지만 이젠 내가 내 나이를 생각할 때 행동에서나 말에서나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나도 이제 다됐구나 해요. 막말로 하면 나도 이제 비참해졌구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니까요.”

다음날 이른 아침. 박감독의 방으로 찾아가니 벌써 선수들을 소집해 종이에 잔뜩 동선을 그려가며 전술 설명에 열심이었다. 전날밤 숙취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생각보다 선수들을 부드럽게 대하시는 것 같은데요”하고 물었다. “그렇게 해야돼요. 입장이 나는 단장이고 감독이 있으니까. 또 여자들은 여자답게 다뤄야지. 남자답게 다루면 역효과가 나요.”

박 감독 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박감독이 여자 선수들에게 약한 편이란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숭민원더스 하성준 감독이 여자선수들을 모질게 다루는 것을 보다 못해 박감독이 직접 뜯어 말릴 정도였단다. 2월 진주 전지훈련때는 선수들에게 손수 김치찌게를 해다 ‘바치기’까지 했다.

이날 오후 울산 공설운동장. 결승전이라할 숭민과 인천제철의 풀리그 마지막 경기가 치러졌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는 가운데 박감독은 경기 내내 벤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찔러. 이런 바보같은…. 한 골 먹으면 두 알 넣는다는 각오로 해야지” 간간이 터져나오는 그의 고함 소리에 주변 사람이 깜짝 깜짝 놀란다.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넣는 거야.” 박감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었고 숭민원더스는 대회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울산〓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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