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경제부총리가 부활됐지만

  • 입력 2001년 1월 25일 18시 27분


남:남의 호주머니를

덕:떡(덕) 주무르듯

우:우물떡 주물떡 하는 사람

1970년대에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남덕우씨를 빗대어 이런 3행시가 유행했었다. 딱히 남덕우씨 개인에 대한 비유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부총리라는 자리를 국민이 어떻게 보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말 한마디로 물가를 올리고 월급봉투도 얄팍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경제부총리였다. 그야말로 남의 호주머니를 주무르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자랑했다. 경제장관들을 한데 모아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 경제 총수였다. 경제에 관한 한 대통령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경제관료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책이었다.

이런 경제부총리 자리가 없어진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문이었다. 재정경제원이란 공룡이 정책을 독점한 탓에 위기에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단죄됐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쳐 경제부총리가 이끌던 재경원은 경제정책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경제부처간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김대중 정부는 경제부총리제를 없앴다. 대신 재경원에서 예산기능이 분리해 기획예산처가 생겼고 금융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가 독점하게 됐다. 그 결과 재경원의 독주는 사라졌으나 재정과 금융정책에서 견제와 균형이 다시 무너졌다. 작년의 잇단 금융사고는 그 폐해를 절감케 했다. 이번에 경제부총리 자리가 다시 생겨 예전과 같은 견제와 균형이 되살아날지 관심이다.

경제관료들을 만나면 옛날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70년대 후반, 경제관료들이 박정희 전대통령을 설득해 안정화 정책을 실시하게 된 것을 자주 들먹거린다. 요컨대 경제관료들이 이렇게 소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는 얘기다. 경제부총리가 있었던 때를 그리워하는 걸까.

경제부총리가 부활된 것은 아마도 경제정책을 제대로 조정하라는 뜻일 게다. 옛날처럼 경제정책을 한 손에 좌지우지하는 부총리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경제가 잘못되면 책임을 물어 바꾸려는 일회용 방패막이도 되어선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부총리의 임기가 짧아지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다.

경제부총리는 경제 실상을 대통령은 물론 정치권에 소상하게 알려 경제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예산, 국민의 세금을 잘 지켜야 한다. 세금이 정치인의 지역구 관리용으로 쓰이지 않는지 살피고 정치인과 그런 타협을 해선 안될 것이다.

그리고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부총리 재임시절에는 욕을 먹었지만 나중에 경제가 잘 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이기주의적인 이해 집단에 돈을 퍼주려는 정부의 욕구도 견제해야 한다.

이런 경제부총리를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경제부총리 물망에 오르던 진념 재경부 장관이 다보스 국제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다가 불참키로 통보해 국제적인 물의를 빚고 있다. 우리 경제가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번엔 참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을까. 아니면 다른 시급한 이유가 있었는지 듣고 싶다. 경제가 잘 되려면 경제관료들이 자신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박영균<금융부장>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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