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백화점의 엘리베이터는 왜 찾기 힘들까

  • 입력 2001년 1월 22일 12시 20분


연말연시는 모임과 쇼핑의 시즌이다. 많은 사람이 보고, 먹고, 웃고, 즐기기 위해 백화점이나 패스트푸드점 등 이른바 '쇼핑의 천국'을 찾아다닌다. 비슷한 배치에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각 매장. 바로 그곳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과학이 숨어있다.

시내 곳곳에서 발견되는 햄버거 가게는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좋다. 빨갛고 노란색의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도 참 예쁘다. 거기에 친구와 마주 보고 앉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고 콜라를 마시노라면 참 멋져 보인다. 더구나 이 의자들은 딱딱하게 각진 의자가 아니라 부드러운 곡면으로 돼 있어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잘 받쳐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저 보기에는 이렇게 예쁘게 생긴 의자가 사실은 30분 이상 앉아 있기에 불편하다는 사실을 독자 여러분은 알고 있는지? 게다가 이 의자와 탁자들은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디자인된 것이라면?

▲패스트푸드점 의자는 불편해야 한다

패스트푸드점의 의자는 깔끔하고 예쁘게 생겼지만 사실은 30분 이상 앉아 있기에 불편하도록 '의도적'으로 디자인돼 있다. 패스트푸드점에 숨어있는 상술이다.

패스트푸드 매장은 손님 회전이 빨라야 한다. 고기와 빵을 미리 구워 종이로 싸놓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대로 손님들에게 잽싸게 건네준다. 손님은 그걸 들고 매장 내의 의자로 가서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빨리 먹어치운 후 가게를 나선다. 그러면 다음 손님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주문에서 가게를 나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10분에서 30분 이내. 햄버거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손님을 받고 내보내기를 거듭해서 많이 팔아야 이문이 남는다. 이른바 ‘박리다매’(薄利多賣)다. 즉 손님이 햄버거를 먹은 후 자리에 계속 앉아 노닥거리면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산업디자이너를 고용해서 일부러 의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배신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이것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패스트푸드 가게 주인이 채택한 상술의 하나니까.

대형 할인매장에 가보자. 손님들은 넓고 넓은 매장에서 쇼핑카트를 하나씩 차지해서는 그것을 밀고 당기며 쇼핑을 한다. 여기저기 선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이런저런 상품을 집어 카트에 넣는다. 쇼핑이 다 끝나면 카트를 밀고 매장 한쪽에 계산대가 주욱 늘어선 곳으로 가서 상품 값을 지불하고 매장을 나선다. 아주 간단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바로 이 매장의 설계다. 손님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큰 매장의 바닥에는 약간의 경사가 져있다. 계산대 쪽이 높고 그 반대편 방향으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바닥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아무래도 카트를 밀고 비탈길을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손님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웬만큼 선택하고 계산을 하려고 계산대 쪽으로 가다보면 힘이 들어간다. 하물며 카트에는 사려고 집어넣은 물건들이 많이 있음에랴. 그러다 보면 걷는 속도도 조금씩 느려지고 마침 옆에 다시 눈에 띄는 물건이 있으면 카트를 멈추고 그 물건을 집어들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일단 물건을 손에 들게 되면 그것을 살 확률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물건을 카트에 던져 놓고 손님은 계산대쪽 선반 끝에 다가온다. 이쯤에서 바로 옆 선반의 맛있는 초콜릿이 눈에 뜨인다. 그걸 한번 자세히 보려고 카트의 방향을 180도 틀면 이제는 경사가 낮아지는 방향이다. 쇼핑카트는 저절로 다시 계산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미끄러져 굴러갈 만하다. 손님은 무의식중에 카트를 따라 다시 매장 깊숙이 가기가 쉬워진다. 다시 쇼핑은 계속된다. 손님을 매장에 잡아두면 잡아둘수록 매상은 오르게 된다. 매장 바닥의 기울기를 조금만 달리 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전략을 수행할 수가 있다.

이렇게 단 두가지의 예만 보더라도 우리는 상업 시설의 디자인에서 손님을 더 붙들어 매두거나 그 반대로 빨리 내보내는 장치가 눈에 보이지 않게 갖춰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장치들은 그 밖에도 아주 많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 느꼈겠지만 백화점 매장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찾기가 힘들다. 법적으로는 갖춰놔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손님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불편하게 해놓는다. 그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한층 오르내리면서 더 많은 상품을 보고, 만지고, 입어보고, 사게 하려는 의도에서다.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꼭 세일 품목을 가득 실어놓은 수레가 있고, 거기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독자들은 수도 없이 보았을 터다.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내리면 꼭 그 자리에 매점이 있다든지 여기저기 좀 걷다가 지칠만하면 그 자리에 아이스크림 수레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등도 모두 우연하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세일즈 전략 차원에서 계획된 것이다.

▲손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분석

'쇼핑의 과학'은 손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분석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러한 세일즈 전략은 누가 어떻게 세우는 것일까? 장사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재치를 발휘해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들은 인류학자나 심리학자가 매장에 나오는 손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치밀하고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난 결과를 갖고 개발해 낸다. 이것을 ‘쇼핑의 과학’ (Science of Shopping)이라 부른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쇼핑이라는 행위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힘들여 이런 것을 분석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손님들이 매장에서 더 많은 물건을 더욱 쉽게 구경하고 결국에는 그것들을 구매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쇼핑 행위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매장에 수십대의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손님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녹화를 해야 한다. 또한 손님으로 가장한 연구원들을 매장에 풀어놓고 진짜 손님 뒤를 몰래 따라다니며 손님이 행하는 일거수 일투족을 세밀히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토요일 오전 11시 7분. 하늘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중년의 대머리 남성이 할인매장 잡화부에 들어선다. 그는 곧바로 지갑 파는 곳으로 가서 열두개의 지갑을 만져본다. 그 중 네개의 가격표를 꺼내 보고는 하나를 선택해 오른손에 쥔다. 11시 16분. 그는 근처의 넥타이 판매대로 가서 일곱개의 넥타이를 손으로 건드린 후 일곱개 모두의 꼬리표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 중 두개의 넥타이 가격표를 확인한다. 그렇지만 결국 아무 넥타이도 고르지 않고 바로 좀전에 고른 지갑값을 지불하러 계산대로 간다. 가는 도중에 마네킹이 쓰고 있는 모자의 가격을 확인해본다. 계산대에 도착시간은 11시 23분. 이 남자 앞에는 두사람이 계산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2분 51초 후. 그는 신용카드로 지갑값을 지불하고 11시 30분에 매장을 나선다.

물론 조사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이토록 자세한 관찰 기록이 수천건, 수만건 쌓이게 되면 이들의 분석을 통해 손님들의 다양한 구매행동 패턴을 추출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혼자 오는 중년의 남성 손님은 평균 17분간 쇼핑을 하는데 원래 사려고 했던 물건만 산다. 또한 이 손님의 행동 경로는 구매물건 진열대와 계산대 사이를 잇는 직선으로만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20대 중반의 여성 두사람이 함께 오면 평균 1시간 15분 동안 매장 전체를 돌아다니며 최소 세가지 이상의 상품을 구매한다. 또한 평균 열여섯가지 상품의 가격표를 확인하며 입장 후 1시간 이내에 매장 내 커피숍에서 약 13분간 대화를 나눈다.

이런 패턴은 매장 내 물건의 배치와 진열 방법에 큰 도움을 준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슈퍼마켓 선반에 상품이 놓인 위치에 따라 같은 종류의 상품이라도 구매율에 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A회사의 참치캔이 손님의 눈보다 더 높은 선반에 있고, B회사 제품은 손님이 무릎이나 허리를 구부려야 집어들 수 있는 아래쪽 위치에 놓여있고, C회사 제품은 A, B회사 제품 중간에 있다고 가정하자. C회사의 참치캔은 A, B 회사 제품 모두를 합한 것 보다 네배 이상 건드려지고, 실제로도 두배 이상 팔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슈퍼마켓 주인은 아무렇게나 상품을 가져다놓는 것이 아니라, 진열선반에 등급을 매겨놓고 유리한 위치에는 마진폭이 큰 상품을 진열하게 된다. 물론 이것을 미끼로 해서 제조회사와 도매가격을 협상하기도 한다. 신제품이 나오면 홍보를 해야 하고, 이것을 가장 좋은 진열선반 위치에 놓기 위해서 제조회사가 공짜로 이 제품을 슈퍼마켓에 납품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쇼핑에도 과학이 있다

이렇듯 이른바 ‘쇼핑의 과학’은 일반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경비와 인력을 들여 이뤄지고 있으며, 이것은 쇼핑 매장의 설계와 상품진열 등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쇼핑의 형태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쇼핑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껏 쇼핑 전문가가 수행해 오던 쇼핑의 과학은 필요가 없어지는 것일까? 매장 자체가 디지털화되니 물건의 진열이나 손님의 빠른 또 늦은 회전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쇼핑의 과학은 계속된다. 아니, 좀더 쉬워진다. 인터넷에서는 손님의 쇼핑 행위가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되기 때문이다. 손님이 몇시에 쇼핑 사이트에 들어오고 얼마나 거기 머물며 무슨 상품을 클릭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상품을 살펴보는지, 결국 어떤 상품을 구매하는지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녹화하거나 연구원을 채용해 관찰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정보가 인터넷 서버에 자동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인터넷으로 들어오는 손님의 나이, 성별, 직업, 학력 등의 개인정보는 구할 수 없다. 기껏해야 손님의 IP주소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래서야 누가 서태지 CD보다 HOT CD를 더 좋아하는지,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오래 쇼핑 사이트에 머무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 쇼핑 사이트는 회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회원이 되면 할인을 좀더 많이 해주기도 하고, 회원을 모집할 때 아예 많은 경품을 내걸기도 한다. 회원으로 가입할 때는 개인정보를 이것저것 입력하게 돼있다.

회원으로 등록 후, 쇼핑 사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로그인을 하면 그 때부터는 그 회원이 컴퓨터 모니터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그 회원의 개인정보와 함께 기록되는 것이고, 그래서 웹서버 저쪽에 있는 인터넷 쇼핑 전문가들은 한층 더 세련된 ‘쇼핑의 과학’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쇼핑은 생산자가 그저 물건을 판매장에 가져다 놓고 소비자가 그 물건을 집어들고 값을 지불하는 그런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상인의 입장에서는 좀더 많은 상품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고 좀더 많은 돈이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판매장(또는 웹)의 설계에서부터 상품의 진열, 소비자의 특성과 행태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또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필요한 것을 쉽게 찾아서 싼 가격에 사기 위해서 이리저리 몰려다니기도 하고, 그러는 가운데 쇼핑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 두가지 입장을 다 챙겨주면서 전체적으로 쇼핑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면 ‘쇼핑의 과학’의 목적은 달성된다.

쇼핑은 먼 옛날 인간이 물물교환을 시작한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인간 고유의 사회적 기능 중 하나다. 쇼핑은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될 것이다.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정보통신 혁명 시대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쇼핑이 이미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이른바 ‘웹쇼핑 과학자’들이 이 글의 독자들 중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본다.

최재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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