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테마무비]삼각관계, 그 영원한 변주곡

입력 2001-01-08 10:56수정 2009-09-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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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매우 진부한 소재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양한 변주 속에서 환골탈태하는 경우가 있다. 삼각관계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멜로드라마에서 지겹도록 반복된 설정이지만 아직도 그 위세는 당당하며 가끔은 엽기적으로 변형된다. 이젠 더 이상 <자이언트>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록 허드슨-제임스 딘' 식의 고전적 삼각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 4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던 <미트 페어런츠>도 가만히 보면 삼각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다. 벤 스틸러는 미래의 처가집에 인사를 갔다. 하지만 장인 어른(로버트 드 니로)은 사위 될 남자가 여러 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녀석은 유태인이고 남자 간호사이며 생긴 것도 별 볼 일 없다. 장인의 딸 사랑은 단순한 부성애의 차원이 아니라 '남자 대 남자'의 경쟁심으로 이어진다. 급기야 장인은 딸의 옛 애인마저 끌어들여 방해공작을 펴는데 그렇다고 사랑이 안 이루어지면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지…. 벤 스틸러는 당연히(!) 사랑을 이룬다.

시간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우디 앨런의 <한나와 그 자매들>(86)을 만날 수 있다. 한나(미아 패로)의 남편 엘리어트(마이클 케인)는 둘째 처제인 리(바바라 허쉬)에게 흑심을 품는다. 한편 세 자매 중 둘째인 홀리(다이안 위스트)는 한나의 전 남편인 미키(우디 앨런)와 맺어진다. 한나와 미키의 이혼사유는 미키의 무정자증. 하지만 홀리는 당당히 임신했고, 그렇다면 미키는 무정자증이 아니었다는 셈인데…. <한나와 그 자매들>은 정신없이 엮어지고 헤어지는 관계 속에서 인생이란 돌고 도는 것임을 보여준다.

워렌 비티 역시 <바람둥이 미용사(Shampoo)>(75)를 통해 삼각관계가 만들어낼 수 있는 극한상황의 정점을 보여준 바 있다. 실생활에서도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임을 자처하는 워렌 비티는 이 영화에서 삼각관계가 아닌 사각 혹은 오각관계를 만들어낸다. 미용사 죠지에겐 애인인 질과 전에 동거했던 여자 재키가 있다. 재키의 정부인 레스터는 사업가. 죠지는 재키의 소개로 사업상 레스터를 만나고 그의 아내인 펠리샤와도 관계를 맺는다. 죠지를 중심으로 끝없이 가지를 쳐가는 '관계'는 퇴폐적인 파티 장면에서 결국 파국을 맞고 허무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삼각관계를 불륜의 소산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순애보 안에서 삼각관계는 더욱 빛나는 법이다. <남자의 향기>의 김승우나 <겨울 나그네>의 강석우 혹은 <시라노>의 제라르 드 파르디유는 모두 "사랑하기에 헤어져야 했던" 혹은 죽음에 다다를 즈음에야 사랑의 진실을 밝힐 수 밖에 없었던 가련한 인생들이다. <초록 물고기>의 순진한 막둥이 한석규도 마찬가지. 그는 사랑을 빼앗기고 배신당하며 목숨마저 잃는다.

삼각관계를 가장 처절하게 비틀었던 재간꾼은 케빈 스미스다. <체이싱 아미>의 벤 애플렉은 알리샤라는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레즈비언이었고 자신이 이성애자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애플렉은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성 정체성보다는 '사랑'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안에서 정상/비정상, 이성애/동성애의 경계 같은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삼각관계의 정점은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과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폴 마주르스키 감독의 <윌리와 필>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뉴욕의 한 아트하우스에 몇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그들이 보고 있는 영화는 <쥴 앤 짐>.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윌리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필 다미코. 사진작가인 그는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윌리와 친구가 되고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지넷과 함께 3인방을 이룬다. 그들은 70년대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마치 히피처럼 '소유하지 않는 사랑'을 나눈다. 9년 동안 지속되던 그들의 관계는 결국 해체되지만 지넷은 너무나 상큼한 한 마디를 남기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다. "안녕, 필. 안녕, 윌리. 너희 둘을 사랑해."

김형석(영화칼럼리스트) woody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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