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당신은 누구 편인가?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8시 44분


냉전시대와 세계화시대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냉전시대에 흔한 질문은 “당신네 미사일은 얼마나 크냐?”였다. 세계화시대의 질문은 “당신네 모뎀(modem)은 얼마나 빠른가?”다. 냉전시대에 가장 빈번히 제기된 질문은 “당신은 누구 편인가?”였다. 세계화시대에 가장 자주하는 질문은 “당신은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다. 즉 냉전시대는 적대적인 편가르기시대였다면 지금은 ‘연결’, 네트워크의 시대라는 뜻이다. 요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시스템에 의한 운영’과도 맥이 통하는 말이다.

▼편가르기와 연결하기▼

우리 정치판 돌아가는 모양은 아직도 냉전시대 스타일이다. 다양한 인물이나 세력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뭔가 생산적인 것을 이끌어내려는 노력보다는 ‘편가르기’가 성행한다. 친권(親權)이냐 반권(反權)이냐, 동교동계냐 개혁파냐, 호남이냐 영남이냐, 우호적 언론이냐 적대적 언론이냐….

우선 집권여당인 민주당을 보면 조직이 어떻게 되어있건, 당직자의 지위가 높건 낮건 이른바 동교동계편이 아니면 힘을 쓰지 못했다. 아무리 극진히 모시겠다며 영입한 당대표라도 그 쪽 편이 아니면 잠시 ‘얼굴마담’노릇만 하다 떠나야 한다. 반면 동교동계 좌장의 힘은 막강해 ‘그를 통하지 않고는’ 인사고 뭐고 되는 게 없다는 얘기가 오래 전부터 파다했다. 그는 과거 민주화과정에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준 것뿐이라고 하지만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임원자리를 그런 사적(私的)인 친소관계에 따라 떡 나눠주다시피 했다면 그동안 이 정부의 인사질서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는 얘기다. 인사뿐아니라 각종 이권및 비리연루설도 끊이지 않았다.

▼좀 떨어져서 보면 보인다▼

그럼 그가 당 내외에서 휘두른 힘은 어디서 나왔나. 당총재인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민주화 동지들’ 취직시키는 권한은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요, 승인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책임의 근원은 대통령에게 있다. 비록 권노갑씨가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나 근본적으로 DJ가 자기사람만 이용해, 즉 조직과 관계없이 비공식라인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스타일이 바뀌지 않는 한 누가 또 ‘제2의 권노갑’이 될지 모른다.

우리 편 사람으로만 줄세우기, 편가르기인사의 극치가 3일천하로 끝난 서울경찰청장 인사다. 경찰내 다양한 인재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조직의 효능을 극대화시키려는 생각보다는 오직 누가 우리 편이냐, 누가 다음 대선과정에서 충성을 다 할 것이냐는 기준으로 판을 짜다보니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당사자는 학력을 속인 의혹 때문에 물러났지만 정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그런 판을 짠 ‘실력자’, 그리고 그런 판을 보고 받고 용인한 청와대와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정당관계도 그렇다. 여당은 유권자들이 만들어준 의석분포를 존중하면서 자민련이건 한나라당이건 어떻게 ‘연결’을 지어 상생(相生)의 길을 가느냐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우리 편의 수(數)를 늘리기 위해 야당의원을 빼가거나 자민련을 자기편으로 묶어놓기 위한 국회법개정안을 억지로 통과시키려고 하니 정치판이 소란스러워진 것이다.

그동안 말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는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현 정부의 개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18일. 선언문은 사실 애정이 깔린 충고였다. 그러나 하루 뒤인 19일, DJ는 당내 개혁주창 초재선의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성과는 거리가 먼 김중권씨를 당대표로 지명했다. 이런 걸 보면 DJ는 아직도 한편에서만 판을 보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좀 떨어져서 봐야 내 편이 아닌 사람도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먼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총재직에 연연하지 말고 초당적인 입장에서 볼 때 먼 구석에 있는 인재도 눈에 띈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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