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보리스베커의 사생활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8시 41분


‘파파라치 때문이지 뭘….’

97년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그런 말이 돌았다. 사실 파파라치의 추격이 없었다면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탄 승용차가 과속하지 않았을 것이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고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건과 관련해 파파라치들은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 우리 국회에서도 ‘파파라치’ 파동이 있었다. 의사당 내에서 건네진 한 국회의원의 쪽지가 사진기자들의 렌즈에 잡혀 언론에 공개되자 그 의원은 “파파라치 같은 행위”라고 흥분했다. 물론 사진기자단의 발언 취소 요구가 뒤따랐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보도를 상업적 목적으로 사진을 찍는 파파라치의 활동에 비유했으니 당연했다.

파파라치의 얘기는 공인(公人)과 사인(私人), 공적생활과 사적생활을 생각하게 한다. 새삼스레 이 문제를 꺼낸 것은 ‘윔블던의 영웅’ 보리스 베커 때문이다. 그는 며칠전 부인 바버라 펠투스와의 별거를 발표했는데 그 이유에 바로 사생활 침해 문제가 포함돼서이다.

베커의 발표는 독일인에게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85년 17세의 나이로 역사와 권위의 윔블던 테니스 챔피언이 된 데다 윔블던 3회 우승을 포함해 그랜드슬램대회 6회 우승 등의 기록을 세운 ‘독일의 자랑’ 아닌가. 더구나 그는 배우이자 가수이던 흑인 부인과 결혼해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며 모델로 꼽히는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늘 칭찬을 받지 않았는가.

93년 결혼한 베커는 부인과의 별거 결정을 “견해의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혼은 별개의 문제”라며 재결합을 포함한 여러 가능성을 남겨 놓았다. 베커는 물론 부인했지만 그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부인이 한 회사와 광고모델 계약을 한 게 원인이 되었으리라는 보도도 뒤따랐다. 사실이 어떻든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명성이 주는 압박과 시도 때도 없는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가 별거 결정의 한 이유”라고 털어놓은 베커의 말이다. 팬은 공인과 사인을 가리지 않으며 그것은 유명세치고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 부부는 사생활까지 알고 싶어하는 팬과 언론의 공세 외에 인종편견을 가진 극우파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 그래서 두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주거를 옮기기까지 했다.

윔블던 우승으로, 부인과의 별거발표로 기자들을 바쁘게 한 베커가 부인과의 화해라는 소식을 안길 것을 기대해본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머릿속을 맴돈다. 공인과 사인의 경계는 무엇이며, 공인이건 사인이건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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