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CEO 열전]진대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

  • 입력 2000년 12월 14일 18시 32분


8월말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디지털 페스티벌’. 삼성전자가 21세기 디지털분야에서 펼쳐갈 사업전략과 비전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협력사 관계자와 수원공장 직원 등 1500여명이 체육관을 빼곡이 메웠다.

진대제(陳大濟·48) 디지털미디어 총괄 대표이사 사장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청중들은 처음에 약간 어리둥절해하는 표정. 곧바로 ‘아!’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의 40대 CEO(최고경영자)와 카우보이 모자. 직원들은 ‘젊은 사장의 격식 파괴’에서 미국 서부개척의 정신을 회사 경영에 도입하려는 의지를 읽었다.

인터뷰 첫 질문으로 카우보이 모자를 쓴 이유를 물었다. “카우보이 모자는 변화의 상징입니다. 관행과 규제에 길들여지고, 정형화된 사고에 익숙해지면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직원들이 각자의 내면에 감춰져있는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사장부터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진사장은 9월부터 ‘넥타이를 풀자’는 새로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거래처와의 회의처럼꼭 필요한 경우를 빼고는 복장에 신경쓰지 말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자는 것. 본인도 수원공장에서는 노타이 차림으로 일한다.

주변에서는 진사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아날로그 시대에, 아날로그 마인드로 성장한 기업을 디지털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해 말 한마디, 악세서리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는 것.

‘40대 CEO 열전’ 시리즈 1회 인물로 진사장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제 50줄이 가까워졌는데 과연 내가 ‘젊은 CEO’의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의 경영철학을 명쾌한 어조로 설명했다.

―디지털이 화두가 되는 세상입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어떤 점에 가장 비중을 두는지요.

“적당히 남을 뒤따라가고 흉내내서 2등으로 버티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남보다 먼저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창출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제품〓싸구려’라는 인식이 선진국 시장에 퍼진 것도 그럭저럭 유사품으로 장사해온 ‘미투(Me Too)’식 전략 탓이 큽니다.”

진사장은 “우리 사회에는 ‘아무 것도 안하면 중간은 된다’는 이상한 풍조가 있다”며 “CEO의 역할은 구성원들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미지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 경기에 비유해 ‘치어리더’라는 것이다.

진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반도체 신화의 주역. ‘미스터 칩’ ‘반도체 사나이’ ‘디지털 전도사’ 등 그의 이름앞에 붙는 호칭도 다양하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IBM 휴렛팩커드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85년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 수석연구원으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4메가D램 시절 합류한 진사장은 16메가부터 독자 개발을 진두지휘, 64메가와 256메가 D램에 이어 1기가 D램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지난해에는 아시아위크지가 뽑은 아시아 밀레니엄 지도자 20인으로 선정됐다.

―반도체 전문가가 가전쪽을 맡은데 대해 의외로 여기는 시각이 있는데….

“지금도 컴퓨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가전제품처럼 다루기 쉽고, 가전제품처럼 고장이 안나는 ‘똑똑한 컴퓨터’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 디지털 기술은 모든 전자제품을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 컨버전화(융복합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품 자체보다는 물건을 쓰는 사람을 더 배려한다는 뜻이지요. 컴퓨터와 그 주변제품, 무선전화기 컬러TV VCR 캠코더 등 가전제품이 하나로 묶이는 날이 머지 않아 옵니다.”

그는 “2003년까지 디지털 TV와 DVD(디지털비디오디스플레이) 등 7개 품목을 세계시장 점유율 15% 이상의 1등 제품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술자에서 최고경영자로 변신했는데 연구실이 그립지는 않습니까.

“기술자는 실험실에서 연구만 하면 됩니다. CEO는 기술의 방향을 예측하면서 기술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까지도 따져야 합니다. ‘이 기술을 한단계 더 가공하면 히트상품을 만들어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식의 판단을 하는 거지요.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마다 엔지니어의 경험과 감각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20∼30대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집무실 벽에 걸린 ‘일일학 일일신(日日學日日新)’ 액자를 가리켰다. “매일 매일 배우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개인의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 공부하고 노력해도 당장 효과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정직합니다. 내 경험으로는 땀흘린 대가가 적어도 5년안에는 돌아오더군요”

진사장은 특히 “아무리 상황이 힘들더라도 상상력을 고갈시키지 말라”고 충고했다. 상상력이 사라지는 순간 나이는 30대라도 정신적 노인이 된다는 것이다.

“아날로그에서는 뒤졌지만 디지털에서는 앞서 가겠다” 한국의 반도체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40대 CEO의 포부는 당찼다.

진대제 사장은 이런 사람

△1952년 경남 의령 출생

△경기고 졸 (70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및 대학원 석사 (77년)

△미국 휴렛팩커드 연구원 (81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 (83년)

△미국 IBM 연구원(83년)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 수석연구원 (85년)

△삼성전자 메모리본부 제품개발센터장 상무 (92년)

△삼성전자 부사장 (96년)

△삼성전자 시스템LSI 대표이사 부사장 (97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 대표이사 사장 (2000년)

# 생활신조:근면 검소 일일학일일신(日日學日日新)

# 주량:맥주 1병

# 담배:안피움

# 취미:테니스 골프 볼링 바둑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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