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결산2000]"집 내놓으면 뭐하나, 오질 않는데…"

  • 입력 2000년 12월 4일 18시 42분


<<2000년은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뀐 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동산은 사두면 오른다’는 공식이 완전히 사라졌고 가격와 거래, 투자형태 등이 크게 바뀌고 있다. 주택 거래량이 크게 줄어들고 가격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집을 사지 않으려는 추세가 확산돼 주택의 가치가 떨어진 반면, 월세 등 임대수요는 증가했다.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 도입으로 새로운 부동산투자상품이 등장했고 증권시장 침체가 부동산시장 침체로 이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올 부동산 시장 결산을 통해 21세기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4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심모씨(40)는 집이 팔리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병원을 이전하느라 지난 9월 압구정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살고 있던 대치동 M아파트를 팔거나 전세로 임대하려고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올 6월 5억3000만원에 구매자가 나타났지만 팔지 않았는데 지금은 5억원에도 수요자가 없다. 전세는 시세보다 3000만원 이상 싼 값에 내놓았지만 3개월째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심씨는 “내년 초까지 집이 팔리거나 임대가 되지 않으면 다시 들어가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0년 부동산 시장의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거래 침체와 가격 약세. 무엇보다 거래 침체가 두드러진다.

법원 행정처에 따르면 99년 소유권이전등기 신청된 부동산 수는 월 평균 152만9832개. 올해는 20% 이상 줄어들어 월 평균 130만개 수준을 보였다. 7월까지 130만개를 웃돌았지만 8월 126만6886개, 9월 112만9529개로 감소했다. 등기 신청 건수는 곧 부동산 거래량을 나타내므로 지난 해에 비해 올 부동산 거래 건수가 20% 이상 감소한 셈이다. 특히 주택 거래량 감소가 두드러져 중개업계는 외환 위기 이전에 비해 30% 이상 거래량이 줄어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택 거래 침체는 전반적인 경기가 불안한데다 주택의 투자 및 보유가치가 떨어진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연구위원은 부동산 거래 침체의 첫 번째 원인으로 경기불안을 꼽았다. “경기나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자신의 전재산이 걸려있는 주택 매매를 쉽게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택 가격의 안정도 거래량 침체를 부추겼다. 가격 안정의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최근 10년새 주택의 절대부족이 크게 해소된 점을 들 수 있다. 주택보급률은 99년 말 93%를 넘어섰고 다가구주택과 주거형오피스텔 등을 합치면 100%를 웃돈다. 수도권도 86%에 이른다. 수도권 인구의 20% 정도가 구매력이 없는 영세민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주택 신규 수요는 크게 줄어든다.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몰락으로 구매력을 가지 주택 수요자가 줄어든 것도 주택 가격의 안정 요소다.

여기에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굳이 내집을 장만하지 않으려는 추세가 확산된 것도 주택 가격의 안정 요인이다. 주택보다는 차나 레저에 우선 순위를 두는 젊은층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이 안정돼 있으면 집 값 상승을 기대할 수 없어 투자 수요가 줄어든다. 수요 감소는 다시 거래 침체와 가격 안정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수요 감소→거래 침체→가격 안정→주택 투자 및 보유가치 하락→가격 약세 전망→수요 감소’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셈이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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