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선택2000]"절차 우선" "표심 먼저" 手검표 공방

  • 입력 2000년 12월 1일 18시 39분


법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과연 어느 후보 쪽으로 기울 것인가.

2일 오전10시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연방 대법원으로 대통령 선거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운 미국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대선을 둘러싼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간에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법정 다툼이 이날 심리로 큰 가닥을 잡기 때문이다. '세기의 재판'이 열린 대법원 주변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심리의 핵심은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팜비치 카운티와 브로워드 카운티 등의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플로리다주 최종 개표결과에 반영케 한 것이 연방 헌법에 위배되는 지의 여부. 플로리다주의 선거를 관장하는 캐서린 해리스 주 국무장관은 주 선거법에 따라 67개 카운티의 개표보고마감시한을 지난달 14일로 설정했으나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민주당의 요청에 따라 이를 지난달 26일로 연기하고, 해리스 장관은 팜비치 카운티 등의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인정하라고 판결했었다.

공화당 부시 후보는 플로리다주의 1차 개표에선 1874표, 기계 재검표에선 930표를 민주당 고어 후보보다 앞섰으나 일부 수작업 재검표 결과가 반영된 최종개표에선 표차가 537표차로 줄었다.

소송을 제기한 공화당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지낸 시어도어 올슨 변호사 등을 내세워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결정은 명백한 위헌일 뿐 아니라 행정부의 영역까지 침범한 부당한 월권행위"라고 목청을 높였다. 올슨 변호사 등은 "플로리다주 선거법에 개표보고마감시한이 분명이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 대법원이 일부 카운티에 대해서만 수작업 재검표를 인정한 것은 연방 헌법의 '평등'과 '정당한 절차' 등을 어긴 것"이라며 "이는 주 대법원이 선거법을 사실상 새로 쓴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선거에 관한 법과 규칙을 만드는 것은 입법부, 이를 집행하는 것은 행정부의 일이므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부당한 결정은 철회돼야 한다는 것이 공화당 주장의 요지였다.

반면 민주당은 저명한 헌법학자인 로렌스 트라이브 하버드 법대 교수와 데이비드 보이스 변호사 등 거물급 변호사들을 내세워 공화당측 주장을 조목조목 공박했다.

이들은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결정은 선거에 관한 상충된 법 조항들을 조화롭게 해석한 것"이라며 "이를 위헌이나 월권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플로리다주 선거법에는 개표보고마감시한이 명시돼 있지만 다른 조항에는 선거부정이나 개표기계에 이상이 있을 경우 이를 연기할 수 있게 돼 있으므로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수작업 재검표를 인정키 위해 개표보고 마감시한을 연장한 것은 적절한 법해석이라는 것.

플로리다주 대법원에서 공화당 올슨 변호사와 대결 끝에 수작업 재검표 인정 판결을 받아냈던 트라이브 교수는 "선거 문제는 주의 권한에 속하는 일이므로 연방 대법원이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논지를 폈다.

9명의 연방 대법관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자 양측 변호인들에게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과연 어떻게 쟁점을 해결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묻기도 했다. 이에 공화당은 미리 제출한 시정의견서에서 밝힌 대로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수작업 재검표 인정 판결을 번복해 줄 것을 요청했고, 민주당은 이를 그대로 존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연방대법원이 공화당의 손을 들어줄 경우 일반 개표에서 앞선 부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다. 반면 민주당의 손을 들어줄 경우엔 고어 후보가 재검표를 통해 기사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게 된다. 플로리다주 리온카운티 순회법원의 명령에 따라 팜비치와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투표지 111만5000장은 순회법원으로 옮겨졌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평소보다 30분이 많은 90분을 심리에 할애했다.

대법원은 관례에 따라 TV 방송사들이 요청한 중계요청을 거부했으나 심리가 끝난 뒤 양측 변호인의 구두 변론 등을 녹음한 테이프를 언론사에 제공하는 이례적 조치를 취했다. 연방 대법원이 심리실황을 녹음으로 공개, 언론이 이를 당일 보도할 수 있게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연방 대법원은 그러나 방청객들에 대해선 녹음이나 메모를 하지 못하게 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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