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종헌/경의선 통일역사 문화교류 장 돼야

  • 입력 2000년 8월 27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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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에 있어서 최근의 관심은 경의선 철도 복원에 모아지고 있다. 경의선은 남으로 경부선과 연결되고 북으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안봉철도(안동∼봉천)와 연결됨으로써 한국을 매개로 하여 일본과 아시아 대륙을 최단거리로 연결시켜주는 교량적 성격을 지닌 철도였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경의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열강들의 이권쟁탈의 표적이 됐으며,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자주적 철도 부설에 대한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진행됐던 철도이다. 일본의 자금지원 제의도 뿌리치고 진행된 경의선 건설은 결국 일본에 의해 러일전쟁 중 군사용 철도로 부설됐다.

철도역사를 연구한 필자로서는 남북한 만남의 상징적 역할을 할 경의선의 ‘통일역사(統一驛舍)’는 보다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통일역사가 단순하게 남북한의 여행객을 수송하는 역할로서 규정되기보다는 남북한 만남의 상징성을 띤 장소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원래 철도역사는 만남의 장소였다.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는 곳이 돼야 하고, 남한의 문화와 북한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 돼야 한다.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남한 문화와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한 북한 문화가 만나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문화로 융합될 수 있어야 한다. 통일역사는 20세기 문화와 21세기 문화가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20세기의 이데올로기가 허물어지고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루어지는 곳이 돼야 한다. 또 통일역사는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며 인간의 문명과 비무장지대(DMZ)의 천혜의 생태계가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통일역사의 문화적 가치는 이처럼 엄청나게 크다. 이제 우리는 문화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현대 문화사적 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산가족 면회소도 경의선 통일역사에 만들어져야 한다. 남북한 문화가 교류할 수 있는 문화공간도,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연구소도 통일역사와 연계돼 만들어져야 한다. 천혜의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공원도 연계돼 설치돼야 한다. 통일역사는 영종도 공항과 연계돼 전세계인이 세계 현대사의 소중한 자산을 느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15세기이래 제철소와 철광석, 조선소가 있던 스페인의 우중충한 도시였던 빌바오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미술관이 들어선 이후 연간 130만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문화관광의 도시가 된 것처럼 긴장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DMZ 일대가 통일역사를 중심으로 세계관광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통일역사는 전세계인에게 열려 있어야 하는 만큼 통일역사의 설계도 전세계 건축가들에게 개방돼야 한다.

따라서 통일역사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종합적인 계획안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가능하면 지금의 문화적 가치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간이역사로 만들 수도 있다. 통일을 준비하듯이 차분하고 치밀하게 통일역사는 계획돼야 한다.

김종헌(배재대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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