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심야족 생활테크]"일도…여가도… 夜 좋다"

  • 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자 좀더 허리를 숙이고 힘껏 손뼉 치세요. 하나 둘!”

24일 늦은 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뉴코아 스포츠클럽의 에어로빅 연습장. 환하게 불을 밝힌 50여평의 공간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20여명의 직장인들이 내뿜는 땀과 열기로 가득했다.

같은 건물의 수영장과 헬스클럽도 직장인들로 붐비기는 마찬가지. 건강을 위해 6년째 ‘야간헬스’를 해 온 회사원 김종환씨(37)는 “퇴근 후 2,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 대신 야간에 운동이나 취미생활에 열중하는 동료들이 최근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인근의 대형할인점 킴스클럽은 수천명의 ‘심야쇼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매장 관계자는 “주말에는 가족단위의 쇼핑객들로 새벽 2, 3시까지 성황을 이뤄 매출도 50% 이상 뛴다”고 귀띔.

도시의 밤은 더 이상 잠자는 시간이 아니다. 대부분이 잠든 시간에도 도심 곳곳에선 일과 문화를 즐기려는 ‘올빼미족’들의 ‘도시탐험’이 진행 중이다. 밤 소비문화의 급속한 확산과 ‘올빼미족’을 겨냥한 심야 비즈니스의 비약적인 발달은 세대와 계층은 물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역까지 초월, ‘시간파괴’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몇년새 잇따라 서울 도심에 들어선 대형 패션몰은 심야문화의 ‘첨병’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25일 자정경 서울 동대문에 자리잡은 두산타워 밀리오레 등 수십층 규모의 대형쇼핑몰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과 조명으로 화려한 자태를 한껏 뽐내며 밤을 낮처럼 밝혔다.

각 매장은 3, 4개씩 옷보따리를 든 수천명의 쇼핑객들로 ‘문전성시’. 회사원 김임옥씨(28·여)는 “질 좋고 값싼 옷을 사기 위해 매주 한두번은 꼭 나온다”고 말했다.

매장 상인과 ‘심야족’을 겨냥한 각종 업소도 성업 중이다. 야식집은 물론 24시간 운영하는 약국, 퀵서비스, 미장원까지 등장하고 있다. 밀리오레 14층의 ‘퀵 스포츠 마사지’는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한다. 주고객은 매장 상인과 손님이지만 인근 식당이나 퀵서비스 직원 등 심야서비스 종사자들도 꽤 많이 이용한다는 것이 박영길사장(49)의 귀띔.

25일 자정 서울 신촌의 신영극장 앞은 심야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초저녁과 다름없었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1만원이면 세 편의 개봉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마천국행’ 티켓은 금세 동이 났다.

매표소의 이미숙과장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각 극장이 불황타개책으로 도입한 심야 영화상영에 이제는 다수의 고정팬이 생겨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의 연구열기는 심야에 최고조에 이른다. 25일 오전 1시 연세대 공학관 지하에 자리잡은 벤처기업 ‘이츠오라’의 사무실. 환한 형광등 아래 반바지 차림의 고성백사장(31) 등 8명의 연구원의 눈은 일제히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돼 있었다.

연구원 이기백씨(22)는 “조용한 밤시간에 능률도 오른다”며 “오전 2, 3시쯤 피곤이 몰려들 땐 학교 앞 오락실에서 ‘DDR’를 하거나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심야문화의 열기도 ‘오프라인’ 못지 않다.

오전 2시 서울 종로3가의 한 PC방은 인터넷 게임에 접속해 ‘심야대전’을 치르는 ‘사이버 전사’들로 만원을 이뤘다. 게임에 열중하느라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는 이모씨(30·대학원생)는 “스타크래프트 등 각종 네트워크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디지털 공간의 시간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라며 연방 졸린 눈을 비벼댔다.

오전 3시 서울 광화문에 있는 사무편의점 ‘킨코스’ 광화문점. 24시간 팩스와 컴퓨터 등 사무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곳은 낮에는 쉬고 밤에 일하거나 공부하는 전문직 직장인과 학생 등이 매일 밤 20∼30명씩 찾는다.

<윤상호·이동영기자>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