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북한사람이 쓴 소박한 고향이야기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북한 향토사학자가 쓴 개성 이야기' 송경록 지음/푸른숲 펴냄▼

“개성에 관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후대들에게 향토애를 심어주는 데 다소나마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향토애로부터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나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배달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조국애를 간직해야 통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박한 향토애와 조국애로 가득찬 이 서문의 주인공은 현재 개성에 살고 있는 68세의 노인이다. 이 책은 칠순에 가까운 저자가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며 완성한 개성의 과거와 현재의 기록이다. 특히 분단 55년만에 북한에 살고 있는 저자와 출판계약을 해 발행된 최초의 책이다. 더욱이 북한에서도 출간되지 않은 저술가의 원고를 받아 남쪽에서 먼저 간행했다. 이 일이 성사되기까지는 개성이 고향인 재미동포 전순태씨의 역할이 컸다. 99년 초 처음 이 책의 원고를 남쪽에 소개한 그는 북한을 오가며 저자의 위임장을 받아 저작권 대리인으로 출판권설정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선례가 없는 일이라 출판사는 통일부와 신중한 협의를 거쳤다.

저자는 남북에 널리 알려진 작가나 학자는 아니다. 단지 북한 송도대학에서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교원생활을 했던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1952년부터 개성에 살면서 유서 깊은 고도 개성의 풍습 민속 유물 유적을 보며 개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됐고 이 책은 그 애정의 결실이다.

개성은 한국전쟁 전에 남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고려시대부터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오랜 도시였지만 한국전쟁은 개성의 거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원자탄이 날아온다고 모두 개성을 떠나게 했기 때문에 개성사람들은 어린애와 노인, 부인들 외에는 대부분 남으로 떠났다. 휴전회담이 시작되기 전까지 융단폭격으로 개성시는 90% 이상 파괴됐다.

하지만 개성은 동남아시아는 물론 아라비아까지 알려졌던 무역과 신문화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선죽교와 개성 남대문, 첨성대, 개성 성균관, 숭양서원, 불일사5층탑 등 수많은 유적이 있다. 최근에는 천태종의 본거지인 영통사와 고려 때 애국자인 문익점 후손의 묘, 기생 황진이의 묘, 18세기 실학의 거두 연암 박지원의 묘 등을 개축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온갖 공장이 들어서고 1992년 김일성주석의 생일에 완공됐다는 개성-평양고속도로, 임수경이 머물렀다는 거리, 개성학생소년궁전 등이 개성을 새로운 경제와 문화의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저자는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개성의 역사를 따라가며 개성의 변화를 남녘 동포들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책의 완성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냥 북한 사람이 쓴 소박한 고향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좋다. “나는 민족성을 살려내려면 조국의 력사와 문화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녘의 동포들 특히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 나갈 청소년들이 민족자주정신을 가지고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하여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280쪽 9800원

<김형찬기자>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