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당의 말 바꾸기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02분


국회의 인사청문회법 협상에서 민주당측은 ‘청문회는 원칙적으로 공개하되 국가기밀 개인사생활 기업비밀 등에 관해서는 비공개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청문회 자체가 공개성을 전제로 한 제도이고, 기밀이나 사생활 범위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가 어려운 만큼 이런 조건을 다는 것은 ‘공개의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짙다. 민주당측은 또 야당이 사흘간 청문회를 벌이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틀 정도로 단축하자고 맞서고 있다.

물론 이러한 민주당의 주장은 한나라당과의 국회 상임위원장 나누기까지를 포함해 여러 가지 쟁점을 유리하게 일괄타결하기 위한 ‘협상카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협상카드이건, 진심이건 간에 국민은 민주당의 속뜻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인사청문회가 공연한 트집잡기와 흠집내기 무대가 돼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겉치레로 흘러서는 더더욱 안된다. 이번 인사 청문회는 건국 이래의 인물 기용에 관한 오류와 반성에 터잡아 제도화되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실시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요 직책의 인물에 대한 자질 확인 그리고 검증, 국회 차원의 여과(濾過)가 필요하다는 공통인식 아래 인사 청문회가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일부라도 ‘비공개’가 전제되면 대상 인물에 대한 검증이 가벼운 통과의례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민주당은 그 전신인 국민회의 시절 발의한 국회법에 스스로 ‘청문회는 공개한다’고 규정한 바 있고 15대 국회 말의 여야 수석부총무 협상에서도 ‘공개 청문회’를 합의해 주었다. 그만큼 공개적이고 자유스러운 인물 검증이야말로 청문회의 본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내세우는 것처럼 ‘국가기밀 개인사생활 기업비밀’이 여야 힘겨루기 속에 정략적으로 까발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은 의원들의 양식과 또 다른 룰로 보호해야지, 그것을 핑계로 청문회의 근본 취지를 흐려서는 안된다.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배분에 대해서도 야당과 합리적인 선에서 타협할 뜻을 보였다가 5일 국회의장 선거에서 이만섭 의원이 뽑힌 이후 태도를 바꾸었다고 한나라당은 비난하고 있다. 자민련과 무소속 등 다른 정파와의 공조를 통해 표 대결로 가더라도 한나라당에 불리할 게 없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총선민의를 거스르는 ‘공조’체제 구축으로 표결환경이 변했다 해서 스스로 제시한 원칙을 허물어서는 안된다. 민주당은 여야영수회담에서 합의한 ‘상생의 정치’ 원칙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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