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몽구회장이 선택할 차례

  • 입력 2000년 6월 2일 19시 04분


정주영명예회장의 3부자 동반퇴진 선언이후 현대그룹이 또다시 형제간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몽헌회장이 회장직을 즉각 사임하는 결단을 내렸고 그룹 구조조정위원회가 지배구조를 오너중심에서 전문경영인으로 교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지만 현대자동차 이사회는 정몽구회장을 재신임해 현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명예회장이 두 아들과 사전에 합의를 거치지 않은 것과 이사회 같은 합법적 의사결정과정 없이 전격적이고 일방적으로 동반퇴진을 발표한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 따라서 자신의 신상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언론발표를 통해 알게 된 정몽구회장의 반발은 한편으로 이해될 수 있다.

현대차의 주장대로 이 회사는 다음주 계열분리될 대상이며 그룹의 자금위기가 이 회사에서 비롯되지 않았기 때문에 타의에 의한 회장퇴진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또 현대차의 회장 재추대 후에도 증시 등 자금시장의 반응이 호의적이기 때문에 이 결정을 번복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지금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몽구회장의 오늘은 스스로 노력하고 쟁취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명예회장의 배려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그는 명예회장의 선택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정몽구회장의 능력을 단정적으로 말할 시기는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며 기업 스스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지배형태라는 사실이 선진국의 예에서 이미 입증되지 않았는가.

유난히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다면 대주주라 해서 반드시 경영으로부터 배제되어야 할 이유는 없으며 그가 그런 존재인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기업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대주주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회사는 시장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더구나 외국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업종이고 외국인 투자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대기업이라면 국제관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몽구회장의 주장대로 현대차가 세계적 자동차메이커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지배구조는 개선되어야 한다.

정몽구회장의 현대차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전문경영 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경영의 사령탑에 앉아 회사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선택의 공은 정몽구회장에게 넘겨져 있다. 형제간의 갈등과 내분으로 현대그룹의 구조개혁 발표가 퇴색된다면 그 피해는 현대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