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은택/美예비선거의 딜레마

  • 입력 2000년 1월 23일 19시 12분


미국 아이오와주 코커스가 24일 저녁(현지시간)에 열린다. 이것을 필두로 주별로 열리는 예비선거를 통해 민주 공화 양당의 대통령후보가 가려진다. 대통령후보부터 사실상 국민의 손으로 뽑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예비선거가 도입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1968년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폭발한 당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72년에 예비선거를 도입했다. 공화당도 76년에 뒤따랐다. 정당 실력자들이 대통령후보 선출을 좌지우지하던 기존 관행에 비춰보면 혁명적인 변화였다. 그런데 이 제도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돈이다. 예비후보들이 예비선거과정부터 국민에게 직접 또는 TV로 유세해야 하기 때문에 선거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번 예비선거과정에서만 양당 예비후보들은 모두 1억달러(약 1150여억원)를 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금동원력이 뛰어난 후보들이 유리해진다. 이런 경향은 선거일 앞당기기(Front loading)와 예비선거 합동개최로 더욱 짙어진다. 미국의 여러 주가 예비선거과정에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예비선거일을 앞으로 당기고 있다. 이해관계가 비슷한 주들은 예비선거를 동시에 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76년 민주당의 지미 카터처럼 무명의 후보가 예비선거과정에서 역전극을 펼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현직 부통령인 앨 고어(민주)와 전직 대통령의 장남이면서 두 번째로 큰 주의 지사인 조지 W 부시(공화)가 양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유권자 참여 확대를 위해 도입된 예비선거가 ‘돈 선거’의 함정에 빠졌다. 돈 선거는 거액 기부자의 정치적 발언력을 높인다. 소수의 거액기부자가 발언력을 가지면 다수의 유권자는 소외되기 쉽다. 현재 민주정치의 딜레마다.

홍은택<워싱턴특파원>eunta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