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속 의학]김형규/영화 '007시리즈'

  • 입력 2000년 1월 18일 20시 23분


007시리즈의 매력은 생각지 못했던 첨단장비, 위기상황에서의 놀라운 반전, 예측불허의 액션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뻔하다. 계속하여 속편이 나오는 것은 그래도 누군가는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독수리 오형제’ 식 책임감을 지닌 어른을 위해서일까?

최근의 007시리즈 역시 컴퓨터 합성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상상의 폭을 한 단계 더 높힌 장면이 연속해 나온다. 그러나 관객은 땅위에서 공중으로, 바다위와 밑을 수시로 끌려다니느라 무엇이 비과학적인 것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핵폭탄이 실려있는 잠수함이 지중해 바닥에 침몰하자 제임스 본드와 본드 걸은 잠수함이 폭발하기 직전 잠수함을 탈출, 전속력으로 수면을 향해 나아간다. 잠시 뒤 잠수함은 폭발하고 두 주인공은 지구를 구한 안도감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다. 수면 밑에서는 수심이 10m씩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증가한다. 기압은 우리몸 1㎠에 1㎏의 힘이 가해지는 것으로 수심 100m면 우리 몸 1㎠당 10㎏의 힘이 가해진다는 뜻이다.

잠수함 안에서는 1기압일지 모르나 잠수함을 빠져나오는 순간 우리 몸은 높은 기압을 받게 된다. 높은 기압에 노출됐다가 정상 기압의 수면으로 빠르게 올라오면 혈액내에 녹아 있던 질소가 공기 방울을 형성하거나 세포에 공기가 확장되어 허파꽈리를 뚫고 말초혈관내로 공기방울이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혈액내의 공기방울은 혈관을 막으므로 급성 혈전증을 만들어 몸이 산산조각이 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사이다 두껑을 따는 순간 없던 공기방울이 갑자기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물 속에서의 폭발은 공기보다 전파속도가 4배이상 빠르고 강력하여 폭발로 인한 인체의 피해는 훨씬 크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을 따진다면 어떻게 영화를 만들며 또 무슨 재미로 보겠는가? 그래서 007은 역시 재미있나 보다.

김형규 (고려대의대 안암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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