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이래서 강하다]인수합병

  • 입력 2000년 1월 16일 20시 03분


인터넷 접속서비스 회사인 아메리카온라인(AOL)이 전통적 미디어 그룹의 제왕이었던 타임워너사를 인수한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것에 비유할 수 있다.

AOL의 99년 매출액은 48억달러로 타임워너의 268억달러의 20%밖에 안된다. 종업원수는 1만2100명 대 7만명. 더구나 AOL 인터넷 가입자수는 2000만명이지만 타임워너사에서 발행하는 잡지의 총구독자수는 1억2000만명으로 6배에 이른다.

이처럼 비교가 안될 만큼 작은 기업이 대기업을 집어삼키는 과정이야말로 미국 경제의 역동성과 경쟁력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다.

물론 AOL이 덩치는 작았지만 주식시가총액(인수가 결정된 7일 기준)에서는 1431억달러 대 1106억달러로 타임워너보다 많았다. 순이익도 7억6200만달러로 1억6800만달러인 타임워너사 보다 훨씬 많다. 현재는 기업규모가 작지만 미래에는 더 밝은 전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AOL의 타임워너사 인수대금은 주식시세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AOL은 타임워너 주주들에게 한주당 AOL주 1.5주로 환산해 바꿔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타임워너의 총발행 주식수는 1억5000만주. 인수대금은 여기에 AOL의 주가와 1.5를 곱해서 나온 가격이다. 인수발표를 기준으로 하면 1650억달러에 이른다. AOL의 주식을 다 팔아도 조달할 수 없는 금액이다.

방법은 AOL주를 더 발행하고 주식투자자들이 더 사주는 것 외에는 없다. 다시 말해 AOL의 타임워너 인수는 주식투자자들이 통합회사의 전망을 보고 인수자금을 대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사들이는 게 인수합병(M&A)이라는 선입견은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종합 미디어그룹 순위 5위였던 바이어컴(Viacom)이 시청률 1위의 TV네트워크와 15개 라디오 방송국을 거느린 2위그룹 CBS방송을 380억달러에 인수한 것도 같은 사례다. 인수발표당시 바이어컴은 주식시가총액에서도 310억달러로 CBS의 370억달러에 못 미쳤다.

더구나 이 거래는 CBS의 멜 카마진 사장이 바이어컴의 섬너 레드스톤 회장에게 먼저 사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이뤄진 것. 레드스톤 회장은 카마진 사장을 두고 ‘뛰어난 세일즈맨’이라고 비유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바이어컴의 CBS인수는 정말 다윗과 골리앗의 비유에 들어맞는다. 바이어컴은 71년 당시 방송국은 프로그램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법에 따라 ‘I Love Lucy’와 같은 프로그램의 재방송권을 팔기 위해 생겨난 CBS의 조그만 자회사였다. 그 자회사가 28년 만에 모회사를 집어삼킨 것이었다.

카마진 사장이 인수해달라고 제안한 것은 과거에는 TV네트워크가 절대적 우세였지만 케이블 TV나 위성방송처럼 채널이 다양해진 지금에는 좋은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스튜디오가 우세를 보이고 있는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사가 미국 3대 네트워크중 하나인 ABC방송을 인수한 것도 같은 이치다.

후에 AT&T에 다시 넘어갔지만 주식시가총액 368억달러로 케이블 TV업계의 3위업체인 미디어원이 268억달러짜리의 4위업체인 컴캐스트에 팔린 것도 미국에서는 기업규모가 문제되지 않는 것을 입증한다.

미래의 성장가능성을 가진 소기업이 현재 성장이 실현된 대기업을 인수하는 역전극은 미국에서는 계속 일어나게 돼 있다.

▼에버스 MCI 회장…9년간 통신회사 60개 인수 '귀재'▼

미국에서 최고의 인수합병 귀재로 꼽히는 이는 MCI 월드컴의 버나드 에버스 회장(59).

아메리카온라인이 타임워너를 인수하기 전까지 미 사상 최대규모였던 MCI 월드컴과 스프린트의 인수합병을 지난해 10월5일 성사시켰다. 인수대금은 1272억 달러.

당시 장거리 전화회사순위 3위인 스프린트를 놓고 먼저 인수를 추진한 회사는 남부에 근거지를 둔 벨사우스사. 1000억 달러를 제시했다. 이를 안 에버스 회장은 더 많은 인수대금에다 인수대금으로 제공할 MCI 월드컴 주식이 폭락하면 이를 보상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또 이 제의에 대한 회답 시한을 수일 내로 못박아버렸다.

이는 그가 97년 지금의 MCI보다 훨씬 덩치가 작았던 ‘월드컴’이라는 회사로 막강한 경쟁자였던 GTE를 물리치고 MCI를 사들인 것과 똑같은 방법이었다. 인수가격은 올리되 상대방의 답변시한은 최소화하는 것.

GTE가 더 높은 가격을 써내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GTE는 패배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벨 애틀랜틱에 싼 값에 팔리는 비운을 맞았다. 에버슨 회장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난 9년간 각종 통신회사만 무려 60여개를 인수했다.

본래 이력은 통신과 무관하다. 캐나다 태생으로 고교농구코치를 하다가 자동차용 극장을 하며 돈을 번 뒤 호텔을 사들였다.

70년대 말 미 최대 장거리통신회사인 AT&T로부터 전화서비스권을 사들여 소매하면서 통신업계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 오늘날 전세계적인 통신왕국을 건설한 계기가 됐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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