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수부장이 청와대로 가다니

  • 입력 2000년 1월 13일 19시 56분


청와대에 사정(司正)과 공직기강 업무를 총괄하는 차관급의 민정수석비서관직이 부활되고 이 자리에 검사장급이 기용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마디로 대통령 또는 청와대가 검찰을 보다 강력하게 장악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호남출신 인사가 또 사정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았다는 지역정서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이번 개편의 직접적 계기가 된 옷로비의혹사건의 교훈을 이런 식으로 귀결짓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문제다. 박정희정권 이래 노태우정권에 이르기까지 지검장급 또는 고검장급 인사를 민정수석등에 앉혀 사정업무를 총괄케 한 것은 같았다. 김영삼정권은 차관급을 1급 법무비서관으로 격하시켰고 그것이 최근 구속된 박주선씨까지 이어졌다. 직명과 직급은 달라도 대통령이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구’역할을 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관행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요인이 돼왔다. 검찰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정치적으로 흔들린다면 사회적 정의구현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 사례가 옷사건이라는 것은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1급 비서관으로는 40명 가까운 검찰의 검사장급 이상을 상대하기 벅차다는 발상에서 직급을 격상했다는 것이다. 검사의 청와대 파견관행과 권한의 집중 및 남용, 대통령의 의지 등에서 문제를 파악해야 옳다. 검찰조직은 행정부의 일부여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소리도 있으나 그런 ‘숙명론’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검찰청법은 현직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신광옥대검중수부장의 경우 민정수석 임명통보를 받자마자 사표를 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법정신을 왜곡한 편법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본인은 물론 검찰내 그 누구도 언젠가 신씨의 검찰복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규정은 현 집권당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야당시절 강력히 주장해 넣은 것이다. 여야 입장에 따라 정략적 편의주의로 법 정신을 짓밟아서는 안된다.

중수부장을 민정수석으로 직행시킨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옷사건에 대한 특검의 수사결론을 뒤엎고 ‘이형자씨 자작극’이라는 옷사건 최종수사결론을 내어 이씨를 구속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그런 정치적 사건에 대해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옷사건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사직동팀을 존속시키기로 한 것은 또 무슨 생각에서인가. 검찰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대통령의 신년사 내용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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