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화익/미술관을 제대로 살리자

  • 입력 2000년 1월 12일 19시 02분


겨울방학을 맞아 전시장을 찾는 초 중 고교생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미술작품을 관람하고 느낀 바를 적어 오라는 숙제를 내주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전에 선생님들로부터 전시장 관람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것 같다. 더욱이 대부분의 전시장은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줄 만한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 무조건 전시 팜플렛만 덩그러니 챙겨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자면 안타까움만 느낄 뿐이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 가보면 매시간 준비된 작품설명 프로그램이나 전시장 투어 가이드들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 관람객에 배움기회 제공못해 ▼

이에 비해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떠한가. 관람객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난 연말에 모 일간지에 실렸던 정양모 전국립중앙박물관장의 충격적인 인터뷰를 읽었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의 이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전문 학예연구 인력의 절대적인 부족이 박물관과 미술관들로 하여금 지역사회 문화교육 담당자로서의 소임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130여명의 직원 중 학예직(큐레이터)이 40명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보다 더하여 100여명의 직원 중 학예직이 14명뿐이다. 박물관 미술관에서 전문직인 학예직의 수가 30%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박물관 미술관의 전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21세기 유망 직종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끄는 학예직은 단기간에 육성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큐레이터를 희망하는 고학력의 능력 있는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제한돼 있다. 국공립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자리는 한정돼 있고 사립박물관 미술관들은 기껏해야 1명, 많아야 3∼4명의 학예직들이 모든 전문적인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전문인력의 확충 및 적절한 활용은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입만 열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외치면서 문화는 언제나 정치 경제의 논리에 밀려 맨 마지막에 거론되는 덤으로 치부돼 왔다. 문화관광부의 문화예산이 이제 겨우 전체 국가예산의 1%가 되었다고 문화관련 종사자들은 기뻐한다. 우리나라에서 그 동안 얼마나 문화가 홀대를 받아왔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 중에서도 미술은 문학 연극 음악 무용 영상 등 여타 문화 분야에 비해서 대중화에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술품은 집을 나서서 박물관 미술관 등 특정 장소를 찾아가야 관람이 가능한데 초 중 고등학교때 숙제를 위해 마지못해 찾아갔던 곳을 성인이 되어서 자발적으로 찾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은 부산시립미술관을 찾아가려고 김해공항에 내려 리무진버스를 탔다. 시립미술관 근처에 내려달라고 했더니 버스기사는 물론 승객들 중에 시립미술관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전문인력-예산 대폭 늘려야 ▼

공공예산으로 운영돼 관람객 유치에 무관심하다고 하더라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박물관 미술관들은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 교육 프로그램 등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못하는 실정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국립극장이나 국립국악원 등에는 기관장을 외부전문가로 영입해 조직을 활성화시키려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으나 박물관 미술관에는 아직도 아무런 변화의 바람이 일지 않고 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37년간 몸담았던 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마지막으로 남긴 충고를 우리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학예연구직 인력 및 박물관 예산의 대폭 확대, 관장의 직급 격상, 용산 새 박물관 건립사업의 관장 직할체제 등은 실로 시급한 과제들이다. 비단 국립중앙박물관만의 문제가 아니고 새 천년, 새 세기가 진정한 ‘문화의 세기’가 되기 위해 미술 분야에서 해결돼야 할 최소한의 상징적 필요조건이다.

이화익 <갤러리 현대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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