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끝을 달리고 있는 기차가 찾아 오기도 한다. 기적 소리가 길게 끌다가 철교를 건너는 바퀴의 굉음에 소리의 꼬리가 잘린다. 내 귓가에는 덜커덩 텅, 덜커덩 텅, 타카닥 탁, 타카닥 탁, 하며 소리가 바뀌는 대목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철교를 건너자마자 다리에서 땅의 침목으로 올라오면서 쇠바퀴가 레일에 건너는 소리도 변한다. 그 소리의 고즈넉한 변화는 마치 죽음처럼 돌연 찾아온 것만 같다. 화물차를 개조한 객차의 천장은 턱없이 높고 양쪽에 놓은 나무의자들도 자리가 널찍했고 휑한 가운데 통로에는 앞과 뒤편에 갈탄을 때는 무쇠난로가 있었다. 연통은 차창을 통해서 밖으로 비죽히 내밀어져 있다. 평야지대를 지나며 많은 간이역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촌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닭이 꼬꼬댁 하면서 나래를 퍼덕거리고 낯선 사투리가 떠들썩하며 개털모자와 물들인 군복 야전 점퍼에 하얗게 앉은 눈을 털면서 그들은 차에 오른다. 난로 위에서 고구마나 오징어를 굽는 냄새가 나고 장꾼은 소주잔을 돌리기도 한다. 나도 한 잔 얻어 마신다. 차창 밖 들판에는 함박눈이 푸지게도 내린다. 작은 간이역도 빼놓지 않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기차는 기적 소리만은 우렁차다. 눈발에 섞여 스며든 석탄 냄새가 매캐하고 방금 올라와 난로에 바짝 접근해 불을 쬐는 노인의 몸에서는 소똥 냄새와 삭은 짚의 냄새가 풍긴다. 가고 또 가도 작은 마을과 얼어붙은 시내와 야트막한 언덕들은 끝나지 않고 나무마다 새까맣게 무슨 헝겊쪼가리처럼 까마귀들이 날아 오르내린다. 종점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은 줄어들고 파장된 장터의 주막처럼 빈 의자와 어지러운 승객들의 흔적만 남아있다. 다리가 연이어 나오기 시작하면 하구는 차츰 넓어져 강 건너편은 아득한 저녁안개에 휩싸여 있다. 눈은 그치지 않았지만 가늘어져서 색만 하얄 뿐 봄날의 송화가루가 날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해가 다 저물지는 않은 모양인데 기차는 어둑어둑 하고 간이역의 출구 앞에는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다. 누군가 보따리를 안고 나만 남은 객차로 오른다. 그는 이미 불이 꺼졌을성 싶은 뒤편 난롯가에 털썩 주저앉는다. 머리에는 담요 쪼가리를 찢어 여자들 스카프 매듯이 두르고 어디서 얻어 입었는지 낡은 국방색의 헐렁한 군대 누비 코트를 그냥 어깨에 걸쳤다. 그가 내쪽을 여러번 힐끔거리며 보는데 눈만 빛났던 것 같다. 얼굴은 어두워서인지 아니면 새까매서인지 잘 모르겠다. 그는 어디로 갈까. 이제는 육지가 끝나버린 항구인데 그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도시로 나갔던 이가 거지가 되어서 피로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저 자란 마을로 돌아가는 걸까.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그가 내게 말을 붙인다. 담배 있으시면 한 개비 달라고. 나는 부시럭 부시럭 호주머니에서 찌그러진 파랑새 담배를 꺼내어 그에게로 다가간다. 그에게 내민다.검게 더러워진 헝겊 사이로 담배를 집는 두 손가락만 나와있다. 코도 뭉그러지고 눈썹도 없다. 애 잡아먹는 문둥이다. 그가 나를 말없이 쳐다본다. 나는 그에게 성냥을 켜서 불을 붙여 준다.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해 보인다. 그의 단단한 침묵에 나는 마음이 놓인다. 나는 그에게서 좀 떨어져서 창가의 빈 자리에 가서 두 다리를 뻗고 앉는다. 기차는 바다가 보이는 하구를 따라서 천천히 항구를 향하여 들어서고 있다. 담배를 다 태운 그는 나직하게 거의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그게 무슨 노래였더라. 울 밑에 선 봉선화의 곡조가 아니었는지 가물가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