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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2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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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만 기댄 경제
그러나 보도 내용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과연 저런 일까지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일까, 혹은 저 정도는 민간에서 알아서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기저기서 누구나 작은 정부를 외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다시 말하면 총론으로는 정부의 역할 축소와 시장 기능 강화에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무엇이든 정부가 나서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난 수십년간 우리가 살아온 정부주도형 경제체제의 유산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민간이나 시장이 스스로 험난한 파고를 넘을 자생력을 상실하였거나 혹은 자생력 배양보다는 먼저 정부의 눈치를 보게 되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 것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20달러를 넘어서면서 회복기에 접어든 우리 경제에 짙은 암운이 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유가상승에 대해 또 다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현재 한국의 경제능력이 과연 20달러 정도의 유가 때문에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수준인가? 또 언제까지 미봉책일 수밖에 없는 정부대책에 기대어 유가의 위험을 넘어야 할 것인가? 이제는 정부의 개입이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결코 한국 경제에 득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유가가 오르더라도 정부가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게 되면 산업계 스스로 사전적인 대처를 하게 될 것이다.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든지, 정유사가 해외 유전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장 참여자 스스로 시장상황에 적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정부의 개입에 안주해 온 나머지 시장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정부의 개입은 단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자생력을 상실하게 하여 결국 점점 더 정부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부르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당장의 고통을 참고 시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도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민간 능동적 대처 필요
물론 시장이 정부의 모든 정책목표를 해결해 줄 만큼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다. 경제에는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외부효과가 있으며 정부에도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정책목표가 많이 있다. 지난날 에너지부문에서 시장보다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뒷면에는 이런 까닭이 있었다. 또한 산업계가 이런 정부정책의 혜택과 도움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보다는 시장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정부는 시장의 주도적 역할을 보조하면서 정부 고유의 영역에 국한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시장의 자생력을 기르기 위한 이러한 과정이 단기적으로 고통을 수반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경제능력은 극단적인 유가상승과 같은 비상상황을 제외하면 충분히 스스로 사태를 극복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정부에 기대어 온 관행에 의해 이러한 능력을 스스로 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동기가 부족한데서 오는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기적 고통을 넘어 시장과 정부의 역할조정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유가변동은 시장이 별 탈없이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질적 역할조정이 잘 이루어지면 별다른 인위적 조치없이도 작은 정부는 저절로 구현될 것이다.
조경엽<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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