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65)

  • 입력 1999년 7월 11일 18시 01분


우리는 택시가 밤 늦게까지 모여 있는 차부로 걸어 나왔습니다. 사모님이 포대기 위로 내가 업고 있는 은결이의 궁둥이를 토닥였습니다.

아이고오 느이는 복도 많다. 쫌만 아파도 주사도 맞고 잉. 한 선생, 백일 기침이나 홍역쯤은 옛날 같으먼 암껏도 아녀. 아그덜 자람서 차례 차례로 고뿔 들드키 치렀응께. 그게 다 클라고 하는 거여. 내가 갈뫼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그날 밤이었죠. 그리고 어쩐지 나는 훌륭한 엄마가 될 수는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구요.

어느 때, 아마 텔레비전 앞에 많이 앉아 있었던 유학 시절이었겠지만 대평원에 사는 사자들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글쎄 말이죠, 수사자는 아무 것두 아닌 거예요. 그야말로 생식에나 잠깐 필요할 뿐 먹고 사는데도 후대의 양육에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 있죠. 공연히 모양만 좋은 갈기털을 날리며 위엄을 부리고 어슬렁거리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하품이나 하며 낮잠으로 보내고 암컷들에게 권력과 서열을 확인시킬 때에는 초원이 온통 떠나가라고 으르렁거리며 울부짖지요. 그리고 다른 수사자들과 겨루어 암사자 무리들을 차지하기만 해요. 먹이사냥을 할 때에도 수사자는 뒷전에서 우두커니 앉아서 게으르게 구경을 하다가 날렵한 암사자들이 협동을 해서 먹이를 잡아 놓으면 그제서야 슬슬 나타나 가장 맛있는 부분을 제일 먼저 독식해요. 그것은 새끼들에게도 관심이 없고 귀찮으면 물어 죽이기까지 한대요. 새끼들을 기르고 먹이는 것은 암사자들만이 하는데 그들은 서로 남의 새끼들까지도 돌보아 준대요. 그런 반면에 수컷들은 서로 정상 자리를 놓고 싸우다가 우두머리를 몰아내고 새 우두머리가 생기면 그놈은 이전의 두목이 퍼뜨린 새끼들까지 모조리 물어 죽이고 말아요. 저항하는 암사자까지도. 뭐 사자 일족의 순수한 혈통 보존을 위해서라나.

내가 이런 생각이 난 건 무슨 남자라든가 정치라든가 문명의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어미와 새끼는 왜 그런지 애처로워요. 자연은 이들을 그렇게 묶어 두었어요. 냉혹하지만 무심한 것이 하늘의 뜻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들도 때가 되면 가차없이 헤어지고 말지요. 사자 이야기를 했지만 사냥감인 들소 어미는 눈 앞에서 새끼가 물려 죽는 꼴을 멀찍이서 바라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허공으로 쳐들린 다리의 경련이 멈추고나서 먹히기 시작하면 푸르륵 콧바람 소리를 내고는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가요.

아아, 나는 그런 어미가 된 거예요. 겨울이 다 가고 갈뫼의 골짜기 깊숙한 곳마다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속에서부터 천천히 녹아내리며 버들강아지가 피어나고 생강나무에 노란 꽃이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 드디어 팔십 삼 년 봄이 되었어요.

나는 이미 지난 겨울에 은결이가 병원에 가던 날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잖아요. 집이라니…당신도 우리 곁에 없는데. 우리 집은 원래 여기였어요.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손 들고 들어가기로 했죠. 은결이에게는 따뜻하게 보살펴 줄 가족들이 필요했으니까요. 나는 사모님에게 말하고 화구며 책이며 중요한 짐들과 은결이에게 필요한 것들만 추려서 먼저 부치고 기저귀 가방 하나 들고서 은결이와 함께 버스를 탔지요. 이제 은결이의 첫돌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답니다. 내가 약속대로 떠나기 며칠 전에 편지를 보냈고 이어서 속달로 도착한 정희의 편지가 나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어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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