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차수/大選공약 안지켜 부른 禍

  • 입력 1999년 5월 31일 18시 53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97년 대선 때 여러가지 공약(公約)을 제시했다. 인사청문회와 특별검사제 도입, 농어가 부채탕감, 정경유착 근절 등 유권자들의 귀에 솔깃하게 들릴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김대통령의 집권에는 이런 공약들이 한몫을 했다.

하지만 집권 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런 주요 공약들이 ‘공약(空約)’으로 바뀌면서 ‘화(禍)’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연일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는 ‘고급옷 로비의혹사건’도 공약만 제대로 지켰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공정한 인사를 위한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실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제도화하기 위한 검찰위원회 신설 등의 약속을 이행했다면 김태정(金泰政)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 시절 편파사정 시비에 휘말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김대통령이 야당 시절 관철시킨 검찰총장 임기제를 지켰어도 임기 3개월을 남겨둔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으로 영전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옷사건’이 터진 뒤에도 공약 불이행은 김대통령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철저한 수사로 한점 의혹없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과거 검찰의 행태를 볼 때 법무장관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권력형 비리 수사는 특별검사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야당 시절의 김대통령이었다.

여권이 뒤늦게나마 심각성을 깨닫고 김태정법무장관의 자진사퇴 등 수습책을 모색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정도의 ‘미봉책’으로는 파행의 악순환을 막기 어렵다. 여권은 더 늦기 전에 대선공약을 되새겨보고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김차수 <정치부>kimc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