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 인격장애]다른 사람은 없는 「자기도취병」

  • 입력 1998년 11월 24일 19시 04분


①‘조그만 일’을 참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

②늘 ‘젠체한다’는 욕을 들으며 ‘왕따’를 당하면서도 다른 아이보다 자신이 낫다고 생각하는 어린이.

③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위해 회사동료들을 지나치게 이용하는 직장인.

④특정인을 좇아다니며 괴롭히는 사람(스토커).

얼핏 보기에 공통점이 없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 각 항목의 사람들은 자기를 극도로 소중히 여기는 ‘자기애 인격장애자’일 가능성이 크다.

▼자기애 인격장애자란?〓‘병적인 나르시시스트’로도 불린다. 나르시시스트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수스’에서 나온 말. 그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굶어 죽었다.

정신과에서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고 다른 사람이 이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여기면서 남의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해로운 자기애’의 저자인 이스라엘의 쉬무엘 바크닌박사는 “나르시수스는 자신이 아니라 연못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다”면서 “자기애 인격장애자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허상(虛想)을 극단적으로 사랑한다”고 설명.

▼자기애는 필요없나?〓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은 필요하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우울증에 덜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기애는 어려울 때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해주고 다른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반면 자기애 인격장애자는 자신의 허상(虛想)을 만들기 위한 대상으로 남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감탄하지 않으면 증오한다.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하급자를 채근한다. 또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에 뛰어들면 망신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험을 싫어한다.

5년 이상 재수를 하거나 10년 이상 고시공부에 매달린 경우처럼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목표에 매달려 허송세월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업무에서 정한 목표만큼 성취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지며 매사에 흥미를 잃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도 한다. ‘모 아니면 도’식의 성격이어서 한 번 안되면 쉽게 포기한다.

▼왜 생기나?〓병적 나르시시스트의 심리상태는 ‘천재로 대우받고 싶은 아이’. 정신분석학자들은 24개월 미만의 어린시절에 충격을 받거나 딸은 아버지, 아들은 어머니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 않아 성격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고 분석. 부모가 과보호하거나 ‘특별한 사람’이기를 요구하며 키운 경우, 다른 아이에게 지지않고 양보하지 말라고 가르친 경우에도 많이 생긴다. 환자 중에 외동이 많은 것도 특징.

▼주위에 ‘환자’가 있다면?〓가족이 아닌 경우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르시시스트는 가깝다고 여긴 상대에게 무시당하면 더 상처받는다는 보고도 있다. 가족이 환자라고 느껴지면 재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면담요법이 주치료. 3∼7년 동안 매주 4∼5회 45∼50분씩 상담하며 환자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 근원적 치료. 1∼2년 주 1, 2회 상담으로 사회적응력을 높이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2차증세로 우울증 강박장애 충동장애 등이 올 경우 증세에 따른 약물을 복용시켜 치료.

(도움말〓서울대의대 정신과 류인균교수 02―760―3173,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이동수교수 02―3410―3581)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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