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혁/「韓日선언문」누설 의혹

  • 입력 1998년 10월 7일 19시 33분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일 첫날인 7일자 아침신문에 양국 정상이 8일 공동발표할 ‘한일(韓日)공동선언’ 내용을 1면에 머릿기사로 실었다. 제목은 ‘한국국민에 사죄(謝罪)명기―일한 공동선언안의 전문(全文)’. 일본어로는 ‘韓國國民に おわび 明記’.

특종이라면 큰 특종이었다. 일본 언론사간의 경쟁은 워낙 치열해 정상회담에서 발표될 공동선언문이 하루 전에 유출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공동선언문의 한 단어 ‘오와비(おわび)’에 이르면서 생각은 복잡해졌다.

‘오와비’란 우리가 그동안 ‘사죄’로 번역해 온 말이기는 하지만 ‘사과(謝過)’로도 번역할 수 있는 말. 한일 양국은 이번 김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과거사문제를 처음으로 문서화하기 때문에 양측 실무자들이 7일 새벽까지도 그 해석을 놓고 절충을 계속했을 만큼 민감한 단어였다.

일본측은 ‘오와비’를 사죄로 번역할 경우 군대위안부문제 등 과거사를 ‘죄(罪)’로 규정하는 셈이 되고 그렇게 되면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어 문안에 ‘사죄’대신 ‘사과’라고 써달라고 요청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그런 ‘오와비’가 담긴 공동선언문이 김대통령의 방일 일정이 채 시작도 되기 전에 전문 보도됐으니 외교통상부 실무자들이 분통을 터뜨릴만 했다. 외교부는 일본 외무성에 항의까지 했다.

요미우리의 특종 경위는 알 수 없었으나 일각에서는 “일본측이 의도적으로 흘린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공동선언문을 미리 흘림으로써 일본의 과거사 반성에 불만을 품고 있는 계층을 충동질했을 것이라는 것.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왠지 개운치 않다.

김창혁<경제부>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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