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68)

  • 입력 1998년 7월 12일 20시 18분


그날의 결혼식 장면은 내게는 몇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다. 멀리까지 차를 타고 갔기 때문이었을까, 멀미를 많이 한 탓에 나는 차 안에서 잠들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젊은 우리 아버지가 봉순이 언니를 데리고 들어가는 사진, 거뭇한 형부와 흰 봉순이 언니의 사진. 그리고 또 있다. 진흙탕으로 뒤범벅된 길 위에 언니의 웨딩드레스 자락이 끌리던 그 순간. ―이건 사진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도화지보다 흰 옷에 붉은 진흙탕물이 튀어오르던 그 순간이. 그러니 그것도 한 징조라고 말해야 옳을까. 글쎄, 하지만 징조라는 건 언제나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야 추인되는 것은 아닐까.

신랑쪽 사람들은 그저 그런 시골 사람들이었지만, 어머니는 사람들이 점잖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날 폐백을 마치고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언니와의 별리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버렸다. 돌아오는 길, 언니의 빈자리를 헤아리기도 전에 멀미는 나를 덮쳤고, 나는 끝내 먹은 걸 다 게우고 어머니의 한복과 아버지 차의 시트를 다 더럽힌 후에야 탈진해서 잠이 들었고 그후 사흘 동안 내내 열에 들뜬 채로 앓았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내가 봉순이 언니가 없는 그 여름과 그 가을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집에 하얀 스피츠가 한마리 생겨났고 그리고 내가 그 잡종인 강아지를 사랑했었고, 그리고 그 강아지는 어느 비바람 치는 가을날 쥐약을 먹고 밤새 신음하다가 아침에야 발견되었다. 메리, 하고 부르면 언제나 앞발을 땅에 모으고 나를 맞아 장난을 칠 준비가 돼 있던, 그 영리한 강아지. 내가 먹던 과자와 내가 남긴 밥을 먹여 키웠던 그 강아지.사는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별리가 필요한지를, 싫었지만 문득 문득 깨달아가며 나도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아마도 많은 시간을 성진 만화가게나 또복이네 또뽑기 집에서 양은으로 만든 국자에, 달고나라고 불리우던 하얀 덩어리나 누런 설탕을 녹여 먹으며 보냈다. 그리고 그해 동지날 봉순이 언니는 해산을 하러 우리집으로 찾아왔다. 마침 그때 전국민을 대상으로 주민등록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했으므로 내 생각에는 아마 그때까지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던 언니에게 호적 정리도 필요했으리라.

―4월에 결혼해놓고 11월에 애를 낳으면 대체 어쩌란 말인지…”

어머니는 거의 내 키만큼이나 한 미역을 사들고 들어서서 봉순이 언니에게 건네며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해가 가기 전에 언니는 아이를 낳았다. 형부를 닮아서 얼굴이 좀 거므스레하고 투실한, 딸 하나만 두었던 형부의 첫 아들이었다.그러니까, 거기까지, 어려운 고아로 자라나 남들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고 이제 좋은 남편을 만나 비로소 평범한 삶에 무난히 편입된 거기까지, 영화로 치자면 그 장면에서 스톱모션을 건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기는 그랬다면 이 소설도 그래서 잘 살았다더라, 투의 옛날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그래, 어렵지만 이야기를 이어가자. 이상한 일은 형부가 자신의 그 귀한 첫 아들을 낳았는데도 우리집에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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