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전문가 의견]『보행자 보호대책 세분돼야』

  • 입력 1998년 7월 6일 19시 56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얼마전 일이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세상에 별 일도 다 있다”며 아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낮에 아파트 입구에서 여섯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택시에 가볍게 스쳤는데 운전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다 큰 애가 빵빵소리도 못듣고 도대체 뭐하는 거냐”며 도리어 아이를 야단쳐 주위에 있던 엄마들이 운전사를 붙잡고 항의했다는 것이었다.

자동차의 백미러에 보행자의 옷소매만 닿아도 머리가 땅에 닿도록 운전자가 사과해야 하는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네덜란드는 마약 임신중절 안락사를 과감히 허용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으로 유명한 나라. 그래서 그런지 보행자 보호 등 교통문제에 있어서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았다.

교통사고시 운전자에게 전적인 책임을 지우는 ‘본네프거리’도 네덜란드 델프트시에서 처음 시작됐다. 다양한 모양과 높이의 과속방지턱도 이 나라가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다. 도시 이면도로에서는 차량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존 30’을 도로교통법에 명문화한 것도 네덜란드가 처음이다.

보행자 보호정책에 관한 한 네덜란드는 ‘아이디어 뱅크’로 통할 만 하다.

헤이그에 있는 ‘도로안전연구소(SWOV)’를 둘러본 뒤 우리나라는 보행자안전 연구에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30여년 역사의 이 연구소에서는 20여명의 연구원들이 보행자안전에 관한 갖가지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어린이 노약자 자전거이용자 부녀자 장애인 등으로 세분해 보행자 안전문제에 접근했다. 횡단보도 옆에 설치된 신호등의 밝기, 표지판의 글씨와 바탕색의 배합만 연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보행자 안전만을 다루는 연구소는 찾기 힘들고 이 분야의 전문가도 손에 꼽을 정도다.

네덜란드 도로안전연구소를 둘러보면서 우리나라도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인 배려와 전문가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권영인(교통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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