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군현/페스탈로치는 있다

  • 입력 1998년 5월 14일 19시 27분


5월은 가정의 달이자 교육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을 비롯해 8일은 어버이날, 그리고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렇게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한달에 함께 들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는 바른 인간관계의 기초 위에 바른 교육의 기회를 갖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문제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교육을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가 서로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적인 이야기다. 학교에서 제아무리 잘 가르쳐도 가정과 사회의 협조 없이는 바람직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최근 촌지 문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본시 촌지란 고도성장을 꿈꾸던 개발 독재 시대에 접대비나 통행료 명목으로 생겨난 것이 언제부턴가 ‘작은 정성’이란 말로 둔갑하여 교육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소수의 학부모와 교사간에 오가는 촌지로 인해 성직자처럼 청렴하게 살아온 대다수 교육자까지도 송두리째 매도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더욱이 학교에 촌지 추방 현수막을 걸어야 한다느니, 교사 촌지 설문조사지를 돌린다느니 하며 교사 촌지 문제로 온통 학교가 시끌벅적하다.

촌지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일부 교사가 받은 몇푼의 촌지가 침소봉대돼 교단 전체의 이미지를 어둡게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런 풍토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국민교육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도매금으로 매도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권위와 이에 따른 교사들의 사기 저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두가지다. 첫째는 촌지 문제로 교사들의 사기가 저하된다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려고 하는 일이 거꾸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문제해결방법이다. 촌지 문제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수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사도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들에게 항상 성직자 이상의 도덕과 윤리를 강요한다. 그래서 현대의 교사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나 남루한 페스탈로치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들은 지금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려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강요받는 윤리의식과 상처받은 자존심을 끌어안고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파수꾼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도시락을 함께 나누는 선생님, 박봉을 쪼개 가난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주는 선생님도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회는 더이상 교육자들에게 쉽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일제의 잔혹한 강점기에 목숨 걸고 민족혼을 지켜낸 것도 교육자들이었고 해방 후 수없이 반복된 국가의 혼란기에도 정치가 타락하고 사회가 흔들려도 묵묵히 국민을 위로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온 것 역시 교육의 힘이었다.

이제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동안 촌지를 주고받은 경험이 있는 학부모나 교사는 “나 하나 쯤이야”하는 생각과 행동이 오늘날 우리 교육을 얼마나 불행한 사태로 몰고왔는지를 깊이 통감하고 허물어진 성을 다시 쌓는 마음을 교사와 제자 그리고 교사와 학부모와의 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리고 교사도 누가 돌을 던지든 손가락질을 하든 자신이 맡은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해나갈 때 교육이 바로 서고 교사가 존경받는 사회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이군현(한국과학기술원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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