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문점으로 가야 한다

동아일보 입력 1998-05-10 19:48수정 2009-09-2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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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남북경협 활성화조치를 발표한 후 첫 대기업 총수 방북이 북한 내부사정때문에 지연되고 있다. 현대그룹은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방북문제를 북한 노동당 비서 김용순(金容淳)이 책임자로 있는 아태평화위원회와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북한과 금강산관광 공동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며 북한측도 이 사업 자체를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북한측은 정명예회장이 제기한 판문점을 통한 육로(陸路) 방북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정명예회장은 경작용 한우 1천마리와 옥수수 1만t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육로방북을 요구했다. 옥수수 1만t은 이미 원산항에 도착했다. 모두 1백20여억원에 이르는 소와 옥수수 지원이 육로방북의 대가치고는 너무 비싸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남북간 육로왕래야말로 교류협력 활성화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남한의 물자가 판문점을 통과해 북녘으로 간다면 그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간 장벽을 녹이는 상징적 쾌거가 될 것이다.

89년 1월 정명예회장과 북한측이 서명한 3개 사업 합의의정서에는 휴전선을 통한 방북이 이미 포함돼 있다. 금강산공동개발과 시베리아개발 공동진출, 원산조선수리소 합작추진이 3개 사업의 내용이다. 이런 대규모 공동사업을 위해 실무기술진의 휴전선을 통한 육로방북이 합의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업이 완료되면 한국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관광객에게도 휴전선 통과를 허용하기로 했었다. 그러다가 남북간에 정치 군사적 사건이 불거지면서 공동사업 추진은 중단됐다.

남북교류협력법이 제정된 90년 이후 한국을 다녀간 북한측 인사는 5백20여명이다. 그러나 남한측 방북인사는 지난 한해에만 1천명을 넘었다. 이들 모두 제삼국을 통하거나 공해상으로 우회해야 했다.

본란은 이달초 우리 정부의 남북경협 활성화조치에 대한 북측의 상응노력 중 하나로 한반도 내 육상 해상 항공편 왕래를 수용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북한당국은 이제 판문점 무실화(無實化)기도를 버려야 한다. 정전협정을 폐기했다면서 중립지대로서의 판문점을 인정하지 않는 식의 허위의식에서 벗어날 때 경제회생의 길이 보일 것이다. 판문점을 긴장과 대치가 사라진 화해협력의 장터로 가꾸어야 한다.

육로왕래에 대해 북한측은 무엇보다도 경제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제삼국경유는 물류비용을 증가시키고 상품원가를 높여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사람도 소도 교역물자와 함께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가야 한다. 휴전선의 철조망이 녹슬어 부스러질 만큼 분단의 세월이 흘렀다. 북한당국자들도 이제 동족을 향한 총부리를 거두고 민족공영의 길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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