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기업의 화의신청 「잔꾀」

  • 입력 1998년 1월 19일 20시 58분


부도난 기업의 화의신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기업들이 ‘잠시 고금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화의를 신청한다고 의심할 정도. 작년 8월까지만 해도 화의제도는 일부 중소기업의 회생절차로 드물게 활용됐을 뿐이다. 그러다가 작년 9월 진로그룹이 돌연 화의를 신청한 이후 올 초까지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기아 한라 쌍방울 뉴코아 태일정밀 청구 보성 나산 등 대기업들도 화의를 신청했다. 특히 작년말 이후 화의신청 기업이 급증한 이유는 우선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기업이 늘었기 때문. 부도 기업들은 왜 법정관리가 아닌 화의를 고집할까. 법정관리는 화의에 비해 이자율이 절반수준에 불과하고 금융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은 두배 이상 길어 기업 회생을 위해서는 훨씬 유리한 데도 말이다. 기업들은 “법정관리를 택하면 십중팔구 경영권을 뺏기게 되는데 누가 법정관리를 택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기업의 회생가능성은 제쳐두고 일단 화의를 신청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은 “화의를 통해서는 중소기업도 회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대기업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계는 또 “화의를 신청한 기업중 일부는 파산이 불가피한 기업이고 일부는 법정관리를 통해서만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화의신청이 계속 폭주하면 금융권의 부실채권은 더 늘어나고 전반적인 산업구조조정이 더뎌지는 부작용만 나타나게 된다고 금융계는 경고한다. 화의를 신청하는 기업주의 주식도 일부 소각하는 대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다소 완화하면 어떨까. 그러면 화의제도에 기대어 경영권도 유지하며 기업 연명을 꾀해보겠다는 안이한 발상을 어느정도 깰 수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은 과감히 파산시켜야 하지만 말이다. 천광암(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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