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전영표/모든 신문 가로짜기로 가야 한다

  • 입력 1998년 1월 6일 08시 31분


동아일보가 1998년 새해를 맞아 전면 가로짜기로 편집체제를 바꾸면서 제호와 일부 제목을 제외한 본문을 모두 한글로만 표기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적절한 때에 단행한데다 한글 가로쓰기 신문의 표본을 제시한 획기적인 편집이라고 하겠다. 1920년 4월1일 창간된 동아일보가 78주년을 고비로 세로쓰기에서 전면 가로짜기로 새로운 틀을 마련한 것은 시대적인 조류에 부합하는 올바른 판단으로 보인다. 다소 늦은 듯도 싶으나 그동안 상당수 지면의 기사에서 부분적으로 가로쓰기를 해오면서 오늘을 준비한 것이라 판단된다. ▼ 읽기 편한 편집 서비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준비가 너무 길었던 것이 아닌가도 싶다. 또한 세로짜기 신문에 가로짜기 지면이 한데 어울려 있었던 것은 일반적인 편집원칙에 어긋날뿐더러 읽기가 불편했던 것은 아마 독자 모두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편집이란 독자에 대한 하나의 서비스다. 독자가 편하고 쉽게 읽고 보도록 짜여진 신문이 잘된 편집이라 하겠다. 그래서 과거의 우리 나라 신문들이 독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세로짜기의 체제를 지켜왔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까지 세로틀을 유지하고 있는 신문들은 보수적인 전통에 너무 얽매여 변화하고 있는 독자층의 욕구를 좀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이제까지의 신문 독자층이 세로틀에 익숙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겠으나 이미 1945년 광복 이후 교과서들이 모두 가로로 편집되었고 이 책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이제 우리 사회의 청장년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이들의 독서경향을 파악하고 이를 따라주는 것이 정보화 사회에 앞서가는 새 시대의 신문일 것이다. 그동안 가로짜기 편집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인간의 눈이 옆으로 길게 되어 있어 가로짜기가 세로짜기보다 가독률이 높은 것으로 흔히 말하고 있었으나 지난날의 여러 연구는 습관에 따라서 가독률의 높낮이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이제 우리 신문의 독자대상은 청장년층이 주축을 이뤄나가고 있다. 이들의 습관은 이미 가로에 익숙한 세대들이다. 이 독자층이 편하게 신문을 읽을 수 있게끔 서비스하자면 세로보다는 가로쓰기의 신문이 바람직하다. 동양의 문화는 세로이고 서양의 문화는 가로라는데서 과거의 인쇄매체들이 모두 문화의 속성을 따르려는 경향이었으나 이러한 속성은 무너진 지가 이미 오래다. 그것은 시중의 일반서적이나 잡지가 모두 가로로 편집되고 있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리의 한글은 세로보다 가로로 편집할 때 기계화 전자화는 물론 글자체의 다양화 등 개발의 여지가 많은 글씨체다. 그동안 한글의 활자체가 개발되지 못하고 겨우 명조체와 고딕체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도 세로짜기의 편집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다. 그것은 이미 가로를 중심으로 한 샘물체와 같은 아름답고 새로운 한글서체가 속속 개발되어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는데서도 잘 입증되고 있다. 이는 세로쓰기에는 쓸 수 없고 가로짜기에서만 활용이 가능한 글씨체로서 앞으로도 더 다양한 가로용 한글서체가 개발되리라 전망되고 있다. 이같이 가로쓰기를 위한 한글의 글씨체는 개발의 여지가 무궁하다. 아마 서양의 로마자가 세로쓰기였더라면 오늘과 같은 수천종에 이르는 아름답고 읽기 쉽고 소위 가독성이 높은 많은 활자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서양문화가 동양보다 앞서 있는 것도 바로 가로쓰기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 다양한 서체 개발 활용을 새해를 맞은 동아일보의 전면 가로짜기 편집을 진심으로 경하해 마지않으면서 특히 한글전용은 뜻깊은 단행이라 치하하고 싶다. 다만 제호와 일부 제목의 한자혼용은 잠정적인 것이라 받아들여 본다. 그러나 신문이나 잡지의 제호는 되도록 바꾸지 않는 것이 일반적 편집이론이다. 1923년에 창간된 미국의 타임지가 아직껏 초기제호의 글씨체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모든 편집인들은 교훈으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전영표(신구전문대교수/출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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