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부 조직의 「따로 노는 손발」

  • 입력 1997년 12월 14일 19시 57분


▼정부가 거창하게 발표한 각종 대책이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수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온다. 소식을 들은 중소기업 사장이 얼마 후 은행에 찾아가 자금지원을 부탁하면 은행담당자는 『정부의 발표는 아직 발표에 불과할 뿐』이라며 나중으로 미루는 식이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를 겪으면서 정부는 하루가 멀다하고 갖가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정책의 홍수 속에 사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이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현장까지 전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더라도 실제 일을 추진하는 일선 공무원이 함께 움직여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위기일수록 정부 조직에는 일사불란한 팀워크가 요구된다 ▼나라 전체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공무원의 나몰라라하는 행태는 곳곳에서 목격된다. 요즘 길을 지나다 보면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시민들 눈에 멀쩡한 보도블록을 들어내고 새 것으로 바꾸는 공무원을 보면서 이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지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안에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내년 예산에서 삭감되기 때문이라는 공무원들의 설명은 배신감만 증폭시킨다 ▼이공대교수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연구비 지원사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배정된 예산에 대해서는 해를 넘기지 말고 무조건 사용하라고 담당 공무원들이 강요에 가까운 주문을 한다는 것이다. 정부내 한편에서는 새해예산 줄이기에 골몰하는 마당에 다른 한쪽에서는 예산낭비를 일삼고 있다면 정부 조직의 손발이 따로 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부가 이런 조직력으로 어떻게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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