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17〉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내 방문을 잠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명작의 고향」 스크랩 북 제일 뒤 비닐 커버 사이에 끼워두었습니다. 이젠 그 스크랩 북도 누구에게 보여줄 수 없는 또 하나의 비밀의 성이 된 것입니다. 고백하자면 그것을 끼우기 전 누구의 입술엔가 입술을 맞추듯 그 편지에 입술을 맞추어보고 가만히 가슴 안에도 끌어안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다음 어느 남자에겐가 하게 될 첫 포옹과 첫 키스는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준비도 예정도 없이 그것은 이렇게 다가와 마음 한가운데 환하게 불을 밝히며 얼굴이 달아오르게 하는 첫 키스는 아니었지만 첫 키스의 기억처럼 여자 아이는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저씨와 주고 받은 편지를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겠지요.
편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고 받았는데, 그러는 일년 동안 단 한 번도 아저씨의 나이라든지 아저씨의 가정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여자 아이는 편지를 보낸 다음날부터, 그러니까 그 편지가 미처 아저씨에게 도착하기도 전부터 아저씨의 편지를 기다렸지만, 그러나 아저씨는 중간에 한두 번을 제외하곤 편지를 받는 즉시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떤 땐 편지를 받은 다음 일 주일이 지나서도 쓰고, 또 길게는 보름이 지나서도 쓰곤 했습니다.
스무살의 여자 아이는 그 나이만큼이나 조급했고, 아저씨는 느긋했던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스무 살에서 스물 한 살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든 혹은 밖에서든 이런저런 기회로 만나는 같거나 비슷한 또래의 남학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저씨와 편지를 주고 받는 동안 한번도 아저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느냐고 물으면 거기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열일곱 살 때 스스로도 모르게 심은 작은 꽃씨가 스스로도 모르게 마음의 꽃밭을 채워나갔다면 이해할 수 있을는지요.
이학년 여름방학 때까지 아저씨와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저씨가 파리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이랬습니다.
「지난번 편지에 말했던 대로 곧 귀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떠나올 때의 계획과는 달리 지금으로선 공부도 지리멸렬이고, 생활도 지리멸렬입니다. 답장을 해도 파리에서는 받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돌아가 연락하겠습니다」.
계산을 하니까 아저씨가 파리로 간 지 꼭 이년이 되는 계절이었습니다.
<글: 이 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