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김동진, “남이 향하지 않은 길을 걸었던 나,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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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1일 1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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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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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의 한 시대를 호흡한 김동진(37)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스포츠동아 6월 27일자 2면 단독보도). 국가대표 측면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1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을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물론 영원한 이별은 아니다. 홍콩 프리미어리그 키치SC 코치로 제2의 축구 인생을 활짝 열어젖힌다. 2016년 12월부터 인연을 맺은 김동진을 위해 키치는 성대한 은퇴무대도 마련했다. 24일 홍콩스타디움에서 펼쳐질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와 키치의 프리시즌 친선경기에서 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눈다. 키치는 이달 초 경주에서 전지훈련을 하는데, 2일 코치로 정식 선임된 김동진은 이 때부터 역할을 수행한다.

2000년 안양LG에 입단하며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김동진은 FC서울~울산 현대~서울 이랜드FC(이상 K리그)를 거쳤고, 제니트(러시아)~항저우(중국)~무앙통(태국)~키치~호이킹SAL(이상 홍콩)에서 뛰었다. A매치는 62경기(2골)를 소화했고 두 차례 월드컵(2006년 독일, 2010년 남아공)과 올림픽(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무대를 밟았다.

다음은 김동진과의 일문일답.

-은퇴 소감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올 1월 플레잉 코치를 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유소년을 가르치면서 어떤 것이 가치가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됐다. 내가 받았던 사랑과 관심,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를 어떻게 하면 돌려드릴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됐다. 적절한 시기에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6년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은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4년 12월 독일 평가전 역시 영원이 간직하고 싶다. 최정예 독일을 상대로 세대교체의 과도기에 있는 우린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됐음에도 우리가 이겼다. 특히 나도 올리버 칸이라는 당대 최고의 골키퍼를 상대로 득점했다. 소속 팀으로 보면 제니트 시절 유럽축구연맹(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밟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간 축구는 어떻게 발전해왔나.

“처음 유럽에 갔을 때는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정도가 해외리거의 전부였다.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어린 나이에 대거 유럽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그것도 좋은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한국선수들이 유럽에서 많이 뛴다는 건 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2018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독일을 이기며 우리가 이를 증명해줬다.”

-지금껏 현역 생활을 하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가족에게 가장 감사하다. 감독님은 두 분이 계신다. 2000년 안양LG 입단했을 때 내게 성장의 길과 기회를 부여하신 조광래 감독님(현 대구FC 대표이사)이다. 제니트로 불러주신 딕 아드보카트 감독(네덜란드)도 제가 잊을 수 없는 분이다. 선수로서 가장 큰 경력을 쌓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분이다.”

-오래 선수생활을 했지만 짧게 커리어가 끝날 뻔도 했다.

“딱 10년 전이다.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쓰러졌을 때다. 많은 분들이 주변에서 제 건강 걱정을 많이 하셨다. 2010남아공월드컵 이후 국가대표의 길을 자연히 마무리하게 됐다. 지금도 ‘괜찮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제가 지금껏 뛰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그 아픈 기억이 있고, 이후의 내 마음은 딱 하나였다. ‘아직도 김동진이 건강하게 축구선수로 뛰고 있음을 증명하자’였다. 그라운드에 나설 때마다 변치 않았던 마음이다. 그렇게 10여년을 더 뛸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80점은 주고 싶다. 주위에서는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메이저대회를 뛰면서 많이 성장했다고 하는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밟았다고 자부한다. 러시아, 중국, 태국, 홍콩 등 팬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환경의 무대를 뛰었다. 그곳에서 한국선수로서 위상과 가치를 증명해내고 싶었다. 그 이후 많은 선수들이 열린 마음으로 도전하더라.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남들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이니까. 내 자신에게 고마웠다.”

-선수로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2008~2009시즌인가, 2010~2011시즌인가, 제니트가 UEFA챔피언스리그에 도전했는데 단 1분도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 유일하게 아쉬운 순간이다.”

-해외 도전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젊다면 무조건 유럽을 향해야 한다. 환경과 퀄리티 전부 다르다. 비록 벨기에 등 최상위 레벨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은 선수들이 그곳에서 부딪혔으면 한다.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면 동남아시아도 추천한다. 체력은 약할지언정, 볼을 다루는 감각 등 기술적인 부분은 전혀 뒤지지 않는다. 중국은 내가 뛰었을 때만 해도 갓 시작하는 단계였다. 아넬카, 케이타 등 대형 스타들도 막 합류하려는 시기였다. 팀은 약했어도 최정상급 공격수들을 막아내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

“지도자 유형은 다양하나 무엇보다 선수들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좋은 지도자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는 코칭스태프를 어려워하는 면이 없진 않은데, 가까운 아시아권만 봐도 선수들이 감독들과 친구처럼 지내더라. 자기표현도 확실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지도자의 장점과 외국 지도자의 마인드를 결합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소통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코치는 어떻게 수행하나?

“키치 선수단에서 수비 코치로 활동하되, 15세 이하(U-15) 유소년 팀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도자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지도자 커리어를 조금씩 쌓으면서 많은 걸 얻고 싶다. 홍콩에는 유럽의 많은 지도자들이 있다. 많이 배우면서 한 걸음씩 성장했으면 한다.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지만 어디서든지 좋은 감독으로, 좋은 지도자로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으면 한다.”

효창운동장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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