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으로…필드 위 아빠들의 ‘행복한 성적표’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9월 30일 05시 45분


‘아빠’라는 이름으로 필드를 누비는 프로골퍼들에게 가족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특히 최근 남자골프 무대에서는 결혼 후 첫 우승 또는 재기에 성공하는 스타들이 늘어나고 있다. 골프공에 아들의 이름을 새기고 다니는 박상현과 아들 시원 군(오른쪽 큰 사진), 결혼 후 재기에 성공한 김경태와 가족, 아들을 얻고 첫 우승에 성공한 문경준과 주흥철의 가족(작은 사진 위로부터). 사진제공|KPGA
‘아빠’라는 이름으로 필드를 누비는 프로골퍼들에게 가족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특히 최근 남자골프 무대에서는 결혼 후 첫 우승 또는 재기에 성공하는 스타들이 늘어나고 있다. 골프공에 아들의 이름을 새기고 다니는 박상현과 아들 시원 군(오른쪽 큰 사진), 결혼 후 재기에 성공한 김경태와 가족, 아들을 얻고 첫 우승에 성공한 문경준과 주흥철의 가족(작은 사진 위로부터). 사진제공|KPGA
김경태, 아빠 된 후 부활, 상금왕 2연패 조준
문경준, 지난해 데뷔 9년 만에 첫 우승 효과
‘다승이 아빠’ 류현우, KPGA 대상수상 영예
세아이 아빠 최진호 “셋째 가진 뒤에 2승”
김형태·주흥철 “가족은 든든한 ‘빽’이죠”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가 열리는 현장에서는 특이한 광경들이 자주 목격된다. 2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골프장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총상금 12억원) 1라운드에서 경기를 끝낸 선수들은 가장 먼저 가족을 품에 안았다. 여자골프대회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프로’가 아닌 ‘아빠’라는 이름으로 필드를 누비는 선수만 어림잡아 10여 명이다.

● “가족은 가장 든든한 빽”

가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이다. 올해 KPGA 투어 상금왕에 도전하는 최진호(32·현대제철)와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 상금왕 2연패와 2016∼2017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을 노리는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 지난해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데뷔 9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문경준(34·휴셈), ‘다승이 아빠’로 불리는 2013년 KPGA 대상 수상자 류현우(35), 통산 4승을 거두고 있는 박상현(33·동아제약), 선수회 ‘회장님’ 김형태(39), 군산의 사나이 주흥철(35)은 모두 가족이라는 든든한 ‘빽’을 가졌다.

공교롭게도 아빠골퍼 대부분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가진 이후 선수생활의 꽃을 피웠다. 올해 동부화재프로미오픈과 넵스헤리티지 우승을 차지하며 데뷔 이후 처음으로 상금왕과 다승왕 등극을 노리는 최진호는 한때 긴 슬럼프에 빠져 골프를 그만두려했었다. 2005년 데뷔해 주목받은 최진호는 2006년 비발디파크오픈에서 데뷔 첫 승을 차지하며 그해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2008년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컷 탈락하는 수모를 경험했다.

가족이 최진호의 골프인생을 바꿔 놨다. 두 아들(승언·승현)의 아빠인 최진호에게 결혼 전 인생의 전부는 골프였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생긴 최진호에겐 안정이라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예전과 달리 골프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도 생겼다. 최진호는 “가족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최진호는 이제 곧 세 아이의 아빠가 된다. 최진호는 “셋째는 뱃속에서부터 복덩이였다. 셋째를 가진 뒤 2승을 했다”면서 “상금왕이라는 타이틀을 아내에게 주고 싶다”며 굳은 각오를 다지고 있다.

● “아들은 복덩이”

김경태에게도 가족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됐다. 2007년 데뷔해 남자골프의 희망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종횡무진 맹활약한 김경태에게 슬럼프란 없을 줄 알았다. 워낙 탄탄한 실력을 자랑했기에 남의 얘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김경태에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2012년 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을 노리던 김경태는 단 몇 천 달러 차이로 출전권을 놓쳤다. 그 충격으로 2년 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50위 이내에서 맴돌던 세계랭킹은 어느새 300위 밖으로 추락했고, 빠져나오려고 노력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끝을 모르던 추락은 결혼과 동시에 멈췄다. 2015년 1월 결혼한 김경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6월 태국에서 열린 혼다타일랜드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뮤제플래티넘오픈, 후지산케이클래식, 아시아퍼시픽 다이아몬드컵, ABC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2010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일본 상금왕에 올랐다. 떨어졌던 세계랭킹도 56위로 끌어올렸다.

부활의 힘이 된 건 가족이다. 결혼 그리고 지난해 4월 첫 아들 재현 군이 태어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가정을 꾸린 뒤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됐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게 되면서 골프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 생겼다.

김경태는 “아들이 태어난 뒤 좋은 일만 생기고 있다. 복덩이인 것 같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알게 됐고, 동시에 가족을 생각하면 힘든 일도 웃어넘길 수 있게 된다”며 아들자랑에 침이 말랐다.

2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골프장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한 김경태의 뒤에는 어김없이 가족이 동행했다. 아내와 아들은 오늘도 아빠를 응원했다.

● 아빠의 이름으로

문경준은 국내 남자골프에서 대표적인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이다. 대학입학 당시만 해도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던 그는 졸업 후 뒤늦게 골프채를 잡고 프로의 길을 걸었다. 경력이 짧았던 문경준은 프로무대에서도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한때 공황장애를 앓는 등 선수 생명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평범했던 문경준은 결혼 후 골프인생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아들이 보는 앞에서 멋지게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문경준은 “10년 동안 곁을 지켜온 아내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든든한 울타리가 됐던 아내가 너무 고맙다”며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대학 때 캠퍼스 커플로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박상현에게 아내는 둘도 없는 단짝이다. 아내는 대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함께 하는 내조의 여왕이다. 물론 옆에는 네 살배기 아들 시원 군이 함께 하고 있다.

올해 KPGA선수회 회장으로 뽑힌 김형태는 소문난 애처가다. 그는 2006년 하나투어 몽베르오픈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여자친구에게 바치며 청혼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가정을 꾸렸다. 7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이들에게 2013년 기쁜 소식이 들어왔다. 아내가 임신을 한 것. 그림자 내조를 펼치기로 유명한 아내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KPGA선수권 대회장을 찾았다. 아내의 든든한 응원을 등에 업은 김형태는 5번째 우승트로피를 선물했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2014년 군산CC오픈에서 데뷔 8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주흥철은 아내와 아들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긴 무명생활을 참고 견뎌온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었던 한을 풀어낸 우승이었다. 특히 그의 아들은 2013년 폐동맥 경막 폐쇄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우승으로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을 보상 받는 것 같다며 눈물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했다.

주흥철은 2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면 골프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다. 가족의 힘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2013년 KPGA 대상 수상자 류현우도 대표적인 아빠골퍼다. ‘다승이 아빠’로 더 유명해진 그는 우승의 염원을 담아 아들 이름을 ‘다승’이라고 짓기까지 했다.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류현우는 지금도 아들의 이름대로 다승을 향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아빠들은 말한다.

“가족은 가장 큰 힘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가족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하게 되고 포기라는 걸 생각할 수 없다.”

인천 |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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