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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8월 2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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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저는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대표팀 선수라고 말하겠습니다. 이렇게 포기를 모르고 최선을 다하는 여자들이 또 어디 있습니까.” 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 임영철(48) 감독은 차분하게 선수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선수단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아니 떠날 수가 없었다.》
5번째 올림픽에 출전한 오성옥(36)은 코트 위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지구력 훈련을 위해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며 땀을 비 오듯 쏟았던 불암산 달리기, ‘저승사자’로 불리던 체력 담당 트레이너들의 불호령 속에 100kg이 넘는 쇳덩이들과 씨름하며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던 체력훈련, 두고 온 아들과 남편 생각에 외롭고 힘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던 태릉선수촌의 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36세의 나이, 지쳐 가는 체력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을 때는 이제 나이도 너무 많아 그만두어야 한다고 고민 고민하다 결국 응했던 올림픽 무대였다.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핸드볼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악한 국내 핸드볼 사정으로 선수층이 얇아 자신을 대체할 선수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태극마크를 달고 불태운 마지막 불꽃이 애매한 판정 끝에 꺼져 가는 순간은 참을 수 없었다.
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이 올림픽 4강 진출을 눈앞에 두고 판정 시비에 휘말렸다. 한국은 21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핸드볼 경기에서 우승 후보 노르웨이와 28-29로 경기를 마쳤다.
한국은 27-28로 뒤지다 경기 종료 6초를 남겨 놓고 문필희의 극적인 슛으로 28-28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그로 함메르셍이 또다시 한국 골대의 그물을 흔들었다.
한국 대표팀의 평균 키는 171cm, 노르웨이는 177cm였다. 노르웨이 주전의 대부분은 180cm가 넘는다. 사실상 머리 하나는 더 큰 체격 차이다. 외국에서는 이번 한국 대표팀을 ‘늙은 팀’이라고 불렀다. 핵심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34세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국내 실업팀과 시청팀을 모두 합쳐야 9개 팀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세대교체를 할 만한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다.
임 감독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투혼의 은메달을 따낸 뒤 “올림픽 때만 반짝 관심을 갖고 평소에는 무관심한 풍토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눈물과 분노를 섞어 하소연했다. 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도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임 감독은 물론 오영란 등 대표선수들은 지난해 실업 소속팀이 해체돼 실업자가 됐었고 체육관이 없어 중학교 체육관을 전전하며 훈련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런 환경을 딛고 올림픽을 준비해온 한국은 아시아 예선에서 중동세의 극심한 편파 판정으로 인해 예선 탈락하는 피해를 받았다. 한국은 IHF에 제소한 끝에 사상 초유의 올림픽 예선 재경기를 치르면서 이번 올림픽에 진출했다. 한국은 4강 문턱에서 또다시 판정시비로 상처를 받았다.
베이징=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