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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8월 18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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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 경기 함께 지켜봐라”
유골함 쌌던 종이 고이접어
오승우감독, 현지에 가져와
함성으로 가득 찼던 경기장은 어느새 고요해졌다.
16일 역도 여자 75kg 이상급 경기가 열린 베이징 항공항천대 체육관. 여자 대표팀 오승우(50) 감독은 종이가방을 갖고 있었다. 흔한 쇼핑백이었지만 소중한 물건이 담긴 듯 가슴에 꼭 품기도 했다.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들어 올린 장미란(25·고양시청)의 시상식이 끝난 뒤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딸 때 장미란을 지도했던 김 코치는 태릉선수촌 역도 지도위원으로 있으면서 감수성이 예민한 장미란의 카운슬러로 큰 역할을 했다.
여자 역도 선수들에게 김 코치는 ‘대모’로 통했다. 고민이 있을 때는 자상한 언니였고 기량이 늘지 않을 때는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김 코치는 힘든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쳐 이론에도 해박했다. 재주가 많았지만 삶은 짧았다.
세상을 떠나기 전 1년여에 걸쳐 투병을 했던 그는 장미란과 윤진희 등 병문안을 오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 시간에 훈련을 더해 올림픽을 준비하라고 했다.
“병원에서 최소한 석 달은 더 살 거라고 했는데…. 제자들이 아예 오지 못하게 일찍 눈을 감은 겁니다.”
종이를 꺼내 보이는 오 감독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6년을 동고동락했던 김 코치가 선수들을 위해 ‘일부러’ 생명을 포기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10일 여자 53kg급에서 은메달을 딴 윤진희(22·한국체대)는 “제 엄마 같았던 김동희 선생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라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윤진희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컸다. 고등학교 때 할머니마저 잃고 혼자가 됐을 때 그를 엄마처럼 돌봐준 사람이 김 코치였다. 미혼이었던 김 코치는 ‘야무진 꼬마’라고 부르던 윤진희가 체급을 올린 뒤 좀처럼 살이 붙지 않자 박봉을 털어 비싼 보약을 사 먹이기도 했다.
김 코치는 오 감독이 베이징에 오기 전 2004 아테네 대회에서부터 활용한 심리 관리 파일을 전해 줬다. 경기 전날부터 플랫폼에 오를 때까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빼곡히 적어 놓은 ‘맞춤형 금메달 지침서’였다. 남성여중고와 한국체대를 거쳐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김 코치는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오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가면 유골함을 쌌던 종이를 제주 용두암이나 부산 용궁사에서 태울 작정이다. 오 감독은 “김 코치가 바다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고인이 된 김 코치는 베이징에 오지 못했다. 하지만 한 장의 종이가 되어 딸이었고, 동생이었던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장미란은 16일 경기에서 단 한 차례의 시도도 실패하지 않고 거뜬하게 역기를 들어 올렸다.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 바벨을 끌어당겨 주는 것 같았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영상취재 : 베이징 = 신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