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롱한다, 고로 존재한다” 악플러의 심리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6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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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악성 댓글 다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1)
온라인에서 악성 댓글을 다는 것은 ‘손가락으로 하는 살인’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한 일이다. 악플러들은 무엇이 문제이기에 온라인에서 매일 치명적인 가해를 저지르는 것일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조롱, 비방, 욕설 등 웬만해선 면전에 대고 할 수 없는 말들을 온라인 기사, 커뮤니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댓글에서는 쉽게 내뱉는 이들이 있다. 욕하고 조롱하는 댓글은 저격당하는 당사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보는 사람마저 불쾌하게 만든다.

자존감이 낮거나 사회에 불만 많은 사람이 악성 댓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국내외 여러 연구에 따르면 악성 댓글 작성자들은 △낮은 자존감 △시기·질투심 △원망 △흥분·충동성 등의 특성을 갖고 있다. 타인을 깎아내리면 자신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우월해진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존감이 낮고, 사회에 불만이 많은 모든 사람이 악성 댓글을 달며 스트레스를 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상습적 악플러들은 왜 이런 식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며 만족감을 얻으려는 것일까.

자기를 드러낼 때 뇌는 쾌감을 느낀다
우선 악의적 댓글을 쓰지 않는 사람을 포함해 일반적인 경우에도 댓글을 쓰는 것은 뇌에서 즐거운 일로 받아들인다.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뇌에서 쾌락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제이슨 미첼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와 다이애나 타미르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는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 자기 생각과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연구했다. 실험 참가자 195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의견이나 신념, 성격 특성에 관해 이야기하게 하고 뇌를 관찰했다. 실험 대조를 위해 다른 사람(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신념과 성격 특성 등을 말하게 하고 이때 뇌에서 나타나는 반응도 함께 관찰했다.

내 의견, 신념을 말할 때 활성화되는 뇌(위)와 돈으로 보상받았을 때 활성화되는 뇌(아래)의 부위는 상당 부분 일치한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내 의견, 신념을 말할 때 활성화되는 뇌(위)와 돈으로 보상받았을 때 활성화되는 뇌(아래)의 부위는 상당 부분 일치한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그 결과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보다 내 이야기를 할 때 뇌에서 도파민 분비에 관여하는 측좌핵(Nucleus accumbens)과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이 크게 활성화됐다. 뇌의 이 영역은 돈이나 음식 등 보상을 받았다고 느낄 때 쾌감을 느끼는 부위다. 즉,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돈을 받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만큼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연구팀이 실시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받을 수 있는 돈을 포기하고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택한 이들이 많았다. 실험참가자 37명에게 △자신의 신념과 생각 △다른 사람의 신념과 생각 △시사 상식 등 3가지 카테고리로 나뉜 약 200개의 질문 중 몇 개를 선택해 답을 하면 질문 당 1~4센트 사이의 보상을 주기로 했다. 자신과 관련된 주제는 보상 금액이 낮았고, 타인과 시사 상식 관련 주제에는 높은 금액이 책정돼 있었다. 실험 결과 대부분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관련된 질문을 압도적으로 많이 골랐다.

폭력적인 생각까지 분출…존재감 느끼며 기쁨
이렇듯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일 수 있다. 문제는 악플러들이 자신의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생각을 거르지 않고 마음껏 표출하면서 쾌락을 즐긴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쾌락 반응은 혼잣말을 할 때보다 남들이 들을 수 있을 때 크게 일어났다. 댓글에서 타인에게 ‘좋아요’를 받거나 자신의 댓글에 또 다른 댓글이 달리는 등 관심을 받으면 쾌감은 더욱 높아진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댓글을 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남을 욕하고 깎아 내려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 받고 자존감도 올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 것이다.

악플러는 폭력적인 생각을 다른 사람이 보도록 쏟아 내면서 쾌감을 느낀다. 게티이미지뱅크
악플러는 폭력적인 생각을 다른 사람이 보도록 쏟아 내면서 쾌감을 느낀다. 게티이미지뱅크

정신질환은 아니지만…치명적인 성격의 ‘4요소’
딜로이 파울루스, 케빈 윌리엄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신질환 환자가 아닌 일반인 중에 유난히 공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연구했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에 따라 질병으로 진단 받고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치고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일반인의 성격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2002년 이른바 성격의 ‘어둠의 3요소(Dark triad)’를 밝혀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 △나르시시즘(Narcissism)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anism)이 이에 속한다. 이후 연구에서 △사디즘(Sadism)까지 더해져 ‘어둠의 4요소(Dark tetrad)’가 됐다. 연구팀은 여기에 속하는 이들을 ‘일상적 사이코패스’ 또는 ‘무증상 사디스트’ 등으로 표현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질환과 비교해 일상적이고 온건한 증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성격의 ‘어둠의 4요소’
·사이코패스: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사회적 규범을 무시
·나르시시즘: 거만함과 자기 중심성이 높음
·마키아벨리즘: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조종하고 착취
·사디즘: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즐김
연구팀이 처음부터 악플러를 염두에 두고 해당 연구를 진행한 것은 아니었으나 후속 연구에서 상습적 악플러의 성격 특성이 ‘어둠의 4요소’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이코패스, 가학을 즐기는 사디스트 성향과 관련이 높았다.



임신한 여성 연예인의 SNS에 달린 악플(사진 위)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우울증 호소 글에 달린 악플(아래).  짧은 글이지만 상당히 가학적이고 반사회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인터넷 화면 캡처
임신한 여성 연예인의 SNS에 달린 악플(사진 위)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우울증 호소 글에 달린 악플(아래). 짧은 글이지만 상당히 가학적이고 반사회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인터넷 화면 캡처

어둡고 위협적인 성격 가진 악플러들
에린 버클 캐나다 위니펙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인터넷 사용자 418명을 대상으로 ‘어둠의 4요소’ 성향을 파악하는 검사를 실시했다. 그런 뒤 이들에게 온라인에서 댓글을 작성하는 취미가 있는지 조사하고 댓글 활동을 하는 이유에 관해 물었다. 댓글을 달지 않는 이들은 전체의 41.3%였고, 댓글 활동을 하는 이들은 이슈에 대한 토론(23.8%)을 하거나 다른 사용자들과 소통·채팅(21.3%)을 위해 댓글을 단다고 답했다. 악플을 달기 위해 댓글 활동을 한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5.6%였다.

악성 댓글을 다는 5.6%는 앞서 실시한 ‘어둠의 4요소’ 검사 결과 모든 성향이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사디즘을 직접적·간접적 성향으로 나눠 총 5개로 분류한 모든 검사 영역에서 다른 응답자들에 비해 매우 높은 경향을 보였다.

악성 댓글을 쓰기 위해 댓글 활동을 하는 이들은 ‘어둠의 4요소’ 성향이 모두 높았지만(노란색 사각형), 댓글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은 모든 성향이 낮게 나타났다(연두색 사각형). 미국 ‘성격과 개인차’ 학회지
악성 댓글을 쓰기 위해 댓글 활동을 하는 이들은 ‘어둠의 4요소’ 성향이 모두 높았지만(노란색 사각형), 댓글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은 모든 성향이 낮게 나타났다(연두색 사각형). 미국 ‘성격과 개인차’ 학회지
또 다른 연구를 살펴보면 특히 가학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같은 연구팀이 실시한 또 다른 연구에서 가학적 성향이 높은 이들과 악플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각각 부상을 당해 고통스러운 사람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유쾌한지, 혹은 불쾌한지를 물었다. 가학적 성향이 높을수록, 악플러 경향이 강할수록 유쾌함을 느낀다고 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연구팀은 “악플러와 사디스트는 모두 타인의 고통에 가학적인 환희를 느낀다”며 “악플 활동을 통해 사디스트는 단지 재미를 원할 뿐이며 인터넷은 그들의 놀이터가 된다”고 설명했다.

머리로만 아는 ‘인지적’ 공감 능력 뛰어나면 더 잔인
다른 사람이 느낄 고통을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남에게 험한 말을 하기 어렵다. 반면 감정적 공감 능력은 떨어지지만 인지적 공감 능력이 높은 이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가 고통스러울 것인지 머리로는 알기 때문에 더 잔인한 말로 상처 줄 수 있다.

2017년 심리학 학술지인 ‘성격과 개인차(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성인 4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서적 공감 능력이 낮고 인지적 공감 능력이 높을수록 악플 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에 반사회적이고 충동적인 사이코패스 성향까지 더해지면 악플 활동을 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연구팀은 “인지적 공감 능력이 높은 악플러는 피해자를 감정적 고통에 빠뜨리는데 성공하기 쉽다”며 “사이코패스나 인지적 공감 능력만 높은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감정적 고통을 가하는 전문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다음 주 이어질 기사에서는 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왜 악성 댓글을 쓰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익명성이 부추기는 폭력성 △익명성 보다 강한 집단동조 심리 △악플러의 어휘 구사 특성 △뇌에 상처를 남기는 언어폭력 등의 내용을 담을 예정입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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