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또 집어 든 스마트폰…혹시 ‘산만 중독’?[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9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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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시도 때도 없이 꺼내 드는 스마트폰은 집중력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 기억력 등 인지 능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일상생활에서 시도 때도 없이 꺼내 드는 스마트폰은 집중력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 기억력 등 인지 능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회의나 수업 중에 스마트폰으로 기사 검색을 하거나 모바일 메신저를 확인한다.

TV나 넷플릭스를 켜고 뭘 볼까 이것저것 살펴보다 결정 못하고 그냥 꺼버릴 때가 많다.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득하게 읽기 힘들다.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내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도 ‘산만 중독(Distraction addiction)’일 수 있다. 산만 중독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습관을 일컫는다.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꾸준히 흥미로운 자극을 찾는다면 산만 중독일 가능성이 있다. 산만 중독은 마약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 같은 임상적 의미의 중독은 아니지만 그만큼 강박적으로 일어나는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 학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산만 중독은 집중력과 기억력 등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냥 방치하면 안 된다.

스마트폰이 주는 재미…사실은 산만함에 취한 것일 수도
스마트폰으로 재미있고 새로운 자극을 접할 때 뇌에서 쾌락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게 된다. 동아일보 DB
스마트폰으로 재미있고 새로운 자극을 접할 때 뇌에서 쾌락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게 된다. 동아일보 DB
스마트폰은 산만 중독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지난해 한 스마트폰앱 분석업체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5.2시간이었다. 꼭 필요한 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에 한눈 팔려 있는 시간이 더 긴 것이 문제다. 스마트폰으로 재미있는 영상을 보거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접속하면 쾌락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중독되기 쉽다. 그 결과 TV 볼 때, 엘리베이터 기다릴 때, 화장실에서, 잠들기 전 시간 등 잠시라도 시간적 여백이 생기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주의를 이곳저곳으로 끊임없이 분산시키게 된다.

●스마트폰 중독 자가 진단 문항●
전혀 그렇지 않다(1점), 그렇지 않다(2점), 그렇다(3점), 매우 그렇다(4점)

1.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줄이려 할 때마다 실패한다.
2.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
3. 적절한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
4. 스마트폰이 옆에 있으면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5. 스마트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6.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7. 스마트폰 이용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8. 스마트폰 이용 때문에 가족과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
9. 스마트폰 이용 때문에 친구 혹은 동료, 사회적 관계에서 심한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다.
10. 스마트폰 때문에 업무(학업) 수행에 어려움이 있다.

합계 10~23점: 일반 사용자 / 24~29점: 잠재적 위험 사용자 / 30~40: 고위험 사용자
출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스마트쉼센터

집중력 떨어트리는 비효율적 ‘스위치태스킹’
집중해야 할 일과 스마트폰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수록 정신적 에너지는 많이 들어가지만 효율은 떨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집중해야 할 일과 스마트폰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수록 정신적 에너지는 많이 들어가지만 효율은 떨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집중해야 할 때 스마트폰이 끼어들어 주의를 분산시키고 산만해지면 당연히 뇌의 인지 처리 효율이 떨어진다. 심지어 스마트폰 안에서도 앱과 앱 사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멀티태스킹이란 없다’의 저자 데이비드 크렌쇼는 이를 비효율적인 ‘스위치태스킹’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효율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사실은 상관없는 일 사이에서 번잡하게 스위치를 왔다 갔다 누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스위치를 껐다 켜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1부터 10까지 숫자를 세거나, 가나다부터 하까지 말하는 것은 3, 4초 만에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1, 가, 2, 나, 3, 다…’처럼 숫자와 글자를 번갈아 말하라고 하면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신적 에너지가 더 들어간다. 이처럼 스마트폰은 상관없는 일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만들어 효율을 떨어트린다. 뇌는 스위치태스킹을 할 때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워진다.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
특히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 TV 등 미디어 기기를 동시에 여러 개 사용하는 습관은 산만 중독에 큰 영향을 준다. 디지털 관련 행동 연구로 유명한 고(故) 클리포드 나스 스탠퍼드대 심리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연구팀은 2009년 여러 개의 미디어 기기로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이 뇌의 인지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봤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 262명을 습관적으로 미디어 멀티태스킹을 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눴다. 이들에게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는 전환 능력과 △다른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이전에 했던 작업의 정보를 기억해 내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제를 풀게 하고 뇌파를 측정했다.

그 결과 습관적으로 멀티태스킹을 하는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두 능력 모두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멀티태스커들은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뽑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며 “반면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는 실험 참가자들은 효율적으로 주의를 할당해 일을 빠르게 처리했다”고 분석했다. 나스 교수는 멀티태스킹으로 산만해진 뇌의 상태를 두고 “정신적으로 망가졌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10년간 나스 교수의 연구와 관련한 수많은 후속 연구에서는 미디어 멀티태스킹이 △주의력 △기억력 △독해 △암산 △문제해결 능력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 성장 중인 유아 청소년에 더 해로워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미디어 기기를 사용할 때 학습효과가 떨어질 뿐 아니라 충동성을 조절하는 능력도 저하됐다. 동아일보 DB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미디어 기기를 사용할 때 학습효과가 떨어질 뿐 아니라 충동성을 조절하는 능력도 저하됐다. 동아일보 DB
특히 뇌가 발달 중인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산만 중독 증상이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의사협회 소아과학 저널에 실린 ‘미디어 멀티태스킹과 인지, 심리, 신경, 학습의 차이’ 연구에 따르면 미디어 멀티태스킹은 유아와 청소년의 기억력과 학습효과를 떨어뜨리고, 충동성은 증가시켰다.

연구에서 소개된 실험 중 하나에서는 독해 숙제를 하는 동안 컴퓨터 메신저를 사용한 학생들은 일정 분량을 읽는 데 49분이 걸렸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29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연구팀은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숙제의 속도가 느려지고 인지 처리 능력이 저하됐다”며 “메시지를 더 많이 보낼수록 주의가 더 자주 전환됐고, 숙제의 정확도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 미디어 멀티태스킹을 하는 성인들은 인지 처리와 정서 통제와 관련된 일을 하는 뇌의 전측대상회피질(ACC)의 부피가 일반인보다 더 작았는데, 아직 뇌가 성장 중인 유아와 청소년의 경우 미디어 멀티태스킹에 더욱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적극적으로 지루해지기 연습
스마트폰 중독을 치료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해법으로 일정 시간 동안 기기 사용을 중단하는 디지털 디톡스를 떠올리지만 산만 중독 해결에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 일주일에 하루 또는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다고 해서 나머지 시간에 저절로 자제력이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만 스마트폰의 산만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끔만 산만해지도록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잠깐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뚜렷한 목적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야 한다. ‘딥 워크’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저자이자 미국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칼 뉴포트는 “무료한 시간은 무료한 대로 놔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정 조율이나 위치 검색 등 스마트폰을 꼭 써야만 하는 상황을 미리 정해두고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현실적으로 업무상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직장에서보다 여가 시간에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약해진 집중력을 강화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집중할 때는 데드라인을 빠듯하게 정해놓고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커피 머신에 왔다 갔다 하거나, 이메일을 체크하거나, SNS도 금물이다. 이 모든 것이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비효율적인 스위치태스킹이기 때문이다. 뉴포트 교수는 “(데드라인을 정해 놓은) 속행 전략은 무료함을 느끼고 새로운 자극에 대한 욕구가 생길 때 견디는 힘을 기를 기회를 제공한다”며 “욕구에 저항하는 훈련은 많이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고 했다.

●산만 중독 극복 실천 팁●

·문자 메시지나 모바일 메신저 답장은 한꺼번에 처리하기
·채팅 대신 실제 대화 시간 늘리기
·온라인 뉴스는 정해놓은 사이트에서 정한 시간 동안만 보기
·집중에 방해되는 특정 사이트나 앱 차단 프로그램 사용하기
·단순 오락거리 콘텐츠를 생성하는 SNS 계정 팔로우 끊기
·실제 지인들로만 SNS 친구 맺기
·SNS 앱 과감하게 삭제하기

-칼 뉴포트 ‘디지털 미니멀리즘’ 참조-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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