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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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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꿈[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11·끝〉](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7/25/132072479.4.jpg)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마음이 들썩여 잠을 잘 수가 없네뿔에 칡꽃이며 참나리 원추리까지 꽂은 소가나를 찾아온 밤엔자귀나무처럼 이파리 오므리고호박꽃처럼 문 닫고 잘 수가 없네아이구 그래도 제집이라고 찾아왔구나엄마는 부엌에서 나와 소를 어루만지고아버지는 말없이 싸리비로 소 잔등을 쓰다듬다가…
![무말랭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10〉](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7/18/132029211.4.jpg)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내 입에 넣어 씹어 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 뿌리고 있다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안도현(1961…
![몽골에서 쓰는 편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9〉](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7/11/131984836.4.jpg)
독수리가 살 수 있는 곳에 독수리가 살고 있었습니다나도 내가 살 수 있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자작나무가 자꾸만 자작나무다워지는 곳이 있었습니다나도 내가 자꾸만 나다워지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내 마음이 자꾸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내가 자꾸만 좋아지는 곳…
![엄마 우주[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8〉](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7/04/131941944.3.jpg)
이름을 내던질 때엄마는 우주가 된다엄마 우주자아 순도 0kgf엄마라는 이름 없음Mother Universe안아주고 싶을 때우주는 엄마가 된다우주 엄마저항 0Ω우주라는 저항 없음AΩ Universe―성기완(1967∼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기란 쉽지 않다. 본의 아…
![한 말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7〉](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6/27/131897645.3.jpg)
새 한 마리 날아와밥 차리다 말고 시를 쓴다햇살 밥 바람 반찬 펼쳐 놓은둔치 밥상 위에다콕콕암팡지게 쓰고 또 쓴다어느결에 강물 한 종지 떠와서는쓴 것 지우기를 수십 번마음 적실 문장 하나 애타게 찾는다쉴 새 없이 방아 찧는 부리를 바라보며강물이 던지는 한 말씀그만 지우란다정말 쓰고픈 …
![구두[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6〉](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6/20/131850432.4.jpg)
그 여자그 남자 죽은 지 몇 년 됐는데도구두를 현관에 그대로 두고 있다뒷굽이 한쪽으로 닳은 낡은 구두더러 광나게 약칠도 하며(중략)구두아침이면밖을 향해 놓았다가저녁이면 지금 막 돌아온 듯이집 안을 향해 돌려놓는 것은그 여자 마음이지살아 있는 추억이야죽은 그 남자 아침이면 출근했다가저녁…
![저녁을 짓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5〉](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6/13/131803298.3.jpg)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멸하…
![고독[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4〉](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6/06/131758046.3.jpg)
내하나의 생존자로 태어나서 여기 누워 있나니한 간(間)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의 파동도 있어바다 깊은 그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내고단한 고기와도 같다.―김광섭(1905∼1977)1938년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김광섭 초기 시의 대표적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100년이 되었…
![긴 봄날[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3〉](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5/30/131719736.4.jpg)
어여쁨이야어찌꽃뿐이랴눈물겹기야어찌새 잎뿐이랴창궐하는 역병(疫病)죄에서조차푸른미나리 내음 난다긴 봄날엔……숨어 사는섧은 정부(情婦)난쟁이 오랑캐꽃외눈 뜨고 내다본다긴 봄날엔……―허영자(1938∼ )10년 전 이 칼럼을 처음 맡았을 때 작은 텃밭의 관리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꽃씨…
![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2〉](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5/23/131671270.3.jpg)
(생략)설거지통 앞하얀 타일 위에다밥그릇에 고인 물을 찍어시 한 줄을 적어본다네모진 타일 속에는그 어떤 암초에도 닿지 않고 먼 길을 항해하다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방주가 있다눈물로 바다를 이루어누군가가 방주를 띄울 수 있도록 하는 자에게는복이 있나니,혼자서 노래를 부르며 우는 자…
![취급이라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1〉](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5/16/131622504.4.jpg)
(생략)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그 위험물 없이도 나는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당신의 세계는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
![못 할 짓[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0〉](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5/09/131574165.3.jpg)
느그 아부지는 요즘 날마다 메뚜기를 잡아다 잡숫는다배추밭으로 논으로 한바퀴 돌면 꽤 잡아 오시거든다리 떼고 나래 떼고 달달 볶아서 꼭꼭 씹어 잡숫는다나보고도 자꾸 먹으라고 하는데난 안 먹어, 못 먹어고 볼록한 것도 눈이라고 잡으려고 손 내밀면 어쩌는지 아냐벼 잎을 안고 뱅글뱅글 뒤로 …
![숲[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9〉](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5/02/131538008.4.jpg)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낯선 그대와 만날 때그대와 나는 왜숲이 아닌가―정희성(1945∼ )격조 있는 시인이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그 사실을 알…
![어떤 귀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8〉](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4/25/131494362.4.jpg)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먼지만 뿌옇게 쌓여 있는데,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방 안에 제멋대로 뒹굴어 자는데,보는 이 없는 것,알아주는 이 없는 것,이마 위에 이고 온별…
![첫사랑[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7〉](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4/18/131446506.4.jpg)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 보아라봄이면 가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