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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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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강가에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9〉

    겨울 강가에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9〉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

    •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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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새가 불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8〉

    높새가 불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8〉

    높새가 불면 / 당홍 연도 날으리 향수는 가슴에 깊이 품고 참대를 꺾어 / 지팡이 짚고 짚풀을 삼어 / 짚새기 신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 슬프고 고요한 / 길손이 되오리 높새가 불면 / 황나비도 날으리 생활도 갈등도 / 그리고 산술도 / 다 잊어버리고 백화를 깎아 /…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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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정도 병인 양[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7〉

    다정도 병인 양[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7〉

    왼손등에 난 상처가 오른손의 존재를 일깨운다 한 손으로 다른 손목을 쥐고 병원으로 실려오는 자살기도자처럼 우리는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지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려놓고 아직 끝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소설가처럼 삶은 늘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손을 내민다 시작해보나마나 뻔한 실패를 향…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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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6〉

    밥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6〉

    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누룽지처럼 눌러앉네 떨그럭떨그럭 간장종지만 한 슬픔이 울고 또 우네 수저에 머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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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엽송[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5〉

    낙엽송[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5〉

    가지 끝에 서서 떨어졌지만저것들은나무의 내장들이다어머니의 손끝을 거쳐어머니의 가슴을 훑어 간딸들의 저 인생 좀 봐어머니가 푹푹 끓이던속 터진내장들이다―신달자(1943∼ )

    • 202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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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의 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4〉

    가을의 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4〉

    넓이와 높이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 나의 눈물에 해당하는…… 산비탈과 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공허를 위하여 오늘은 저 황금빛 열매를 마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약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기적들을 해가 지…

    •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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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한 영혼을 위하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3〉

    상한 영혼을 위하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3〉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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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화과 숲[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2〉

    무화과 숲[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2〉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1988∼)한눈에 반할 때가 있다. 처음 본 그 순간에 결정된다. 마음…

    •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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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남풍경[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1〉

    화남풍경[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1〉

    세상의 모든 물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부력, 상인은 새끼를 밴 줄도 모르고 어미 당나귀를 재촉하였다 달빛은 파랗게 빛나고 아직 새도 깨어나지 않은 어두운 길을 온몸으로 채찍 받으며 어미는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으로 가는 길 새끼는 눈도 뜨지 못한 채 거꾸로 누워 구름처럼 둥…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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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금니를 뺀 날의 저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0〉

    어금니를 뺀 날의 저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0〉

    어린 강아지를 만지듯 잇몸에 손가락을 대본다한 번도 알지 못하는 감각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 살 만한 것인가이빨로 물어뜯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말한다이를 잘 숨기고 필요할 때 끈질기게 물어뜯으라고이렇게 부드러운 말 속에피의 비린 맛이 숨어 있다니그러나 그들은 늘 자신…

    •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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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9〉

    편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9〉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나의 시작이다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한 구절…

    •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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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산 업고 가을 오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8〉

    백운산 업고 가을 오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8〉

    타는 가을 산, 백운 계곡 가는 여울의 찬 목소리야트막한 중턱에 앉아 소 이루다추분 벗듯 고요한 소에 낙엽 한 장 떠지금, 파르르르 물 어깨 떨린다물속으로 떨어진 하늘 한 귀가붉은 잎을 구름 위로 띄운다마음이 삭아 바람 더는 산 오르지 못한다하루가 너무 높다 맑은 숨 고여저 물, 오래…

    •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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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막이 오는 순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6〉

    적막이 오는 순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6〉

    여름 내내 방충망에 붙어 울던 매미. 어느 날 도막난 소리를 끝으로 조용해 졌다 잘 가거라, 불편했던 동거여 본래 공존이란 없었던 것 매미 그렇게 떠나시고 누가 걸어 놓은 것일까 적멸에 든 서쪽 하늘, 말랑한 구름 한 덩이 떠 있다 ―조승래(1959∼ )여름은 격렬하다. 그것은 …

    •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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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 바라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5〉

    하늘 바라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5〉

    청보리밭 청하늘 종다리 울어대면 어머니는 아지랑이로 장독대 닦아놓고 나는 아지랑이로 마당 쓸어놓고 왠지 모를 그리움에 눈언저리 시큰거려 머언 하늘 바라기 했지 ―이준관(1949∼)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다 보면 ‘호모 비아토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행하는 인간…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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