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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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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일[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5〉

    모일[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5〉

    시인이라는 말은내 성명 위에 늘 붙는 관사.이 낡은 모자를 쓰고나는비오는 거리로 헤매였다.이것은 전신을 가리기에는너무나 어줍잖은 것또한 나만 쳐다보는어린 것들을 덮기에도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 허나, 인간이평생 마른옷만 입을가부냐.다만 모발이 젖지 않는그것만으로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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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벗을 그리며 ―지훈에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4〉

    옛 벗을 그리며 ―지훈에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4〉

    나는 회현동에 있고/당신은 마석에 있습니다./우리는 헤어진 것이 아닙니다./당신은 성북동에 살고 있었고/나는 명륜동에 살고 있었을 때에도/우리가 헤어져 있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나는 이승에 있고/당신은 저승에 있어도 좋습니다./우리는 헤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나는 일본에서 대학의…

    •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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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수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3〉

    저수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3〉

    자기 안에 발 담그는 것들을물에 젖게 하는 법이 없다모난 돌멩이라고모난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검은 돌멩이라고검은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산이고 구름이고물가에 늘어선 나무며 나는 새까지겹쳐서 들어가도어느 것 하나 상처입지 않는다바람은쉴 새 없이 넘어가는수면 위의 줄글을 다 읽기는 하는…

    •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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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드레밥[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2〉

    곤드레밥[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2〉

    봄에 갈무리해놓았던/곤드레나물을 꺼내 해동시킨 후/들기름에 무쳐 밥을 안치고/달래간장에 쓱쓱 한 끼 때운다/강원도 정선 비행기재를 지나/나의 위장을 거친 곤드레는/비로소 흐물흐물해진 제 삭신을/내려놓는다/반찬이 마땅찮을 때 생각나는 곤드레나/톳나물,/아무리 애를 써도/조연일 수밖에 없…

    • 202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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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 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1〉

    빈 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1〉

    꽃도 이젠 떨어지니/뜰은 사뭇 빈뜰이겠지./빈뜰에/내려앉는/꽃잎/바람에 날려가고/한뼘 심장이 허허해지면/우린 잘못을 지나/어떤 죄라도 벌하지 말까./저 빈뜰에/한 그루 꽃이 없어도/여전한 햇빛―이탄(1940∼2010)

    •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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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0〉

    꽃[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90〉

    네 그림자를 밟는거리쯤에서오래 너를 바라보고 싶다팔을 들어네 속닢께 손이 닿는그 거리쯤에오래 오래 서 있으면거리도 없이너는 내 마음에 와 닿아아직 터지지 않는 꽃망울 하나무량하게 피어 올라나는 네 앞에서발이 붙었다.―신달자(1943∼ )

    •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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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 부는 날[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9〉

    바람 부는 날[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9〉

    나무에물오르는 것 보며꽃 핀다꽃 핀다 하는 사이에어느덧 꽃은 피고,가지에 바람부는 것 보며꽃 진다꽃 진다 하는 사이에어느덧 꽃은 졌네.소용돌이치는 탁류의 세월이여!이마 위에 흩어진서리 묻은 머리카락 걷어올리며걷어올리며 애태우는 이 새벽,꽃피는 것 애달파라꽃지는 것 애달파라.―민영(19…

    •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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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래[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8〉

    빨래[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8〉

    빨래로 널려야지부끄럼 한 점 없는나는 빨래로 널려야지.피얼룩기름때숨어 살던 눈물또 서툰 사랑도이젠 다 떨어버려야지.다시 살아나야지.밝은 햇볕 아래종횡무진 바람 속에젖은 몸 다 말리고하얀 나래 퍼득여야지한 점 부끄러움 없는하얀 나래 퍼득여야지.―김혜숙(1937∼ )

    •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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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생[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7〉

    이생[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7〉

    엄마가 나 되고내가 엄마 되면그 자장가 불러줄게엄마가 한 번도 안 불러준엄마가 한 번도 못 들어본그 자장가 불러줄게내가 엄마 되고엄마가 나 되면예쁜 엄마 도시락 싸시 지으러 가는 백일장에구름처럼 흰 레이스 원피스며칠 전날 밤부터 머리맡에 걸어둘게나는 엄마 되고엄마는 나 되어서둥실―하재…

    • 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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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 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6〉

    소금 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6〉

    잠든 엄마의 입안은 폭설을 삼킨 밤하늘, / 사람이 그 작은 단지에 담길 수 있다니 / 엄마는 길게 한번 울었고, /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꺼내지 못했다. / 눈물을 소금으로 만들 수 있다면 / 가장 슬플 때의 맛을 알 수 있을 텐데 / 둥둥 뜬 반달 모양의 뭇국만 / 으깨 먹…

    • 202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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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범벅[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5〉

    꽃범벅[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5〉

    꽃 베던 아해가 키 높은 목련꽃 예닐곱 장 갖다가 민들레꽃 제비꽃 하얀 냉이꽃 한 바구니 모아다가 물 촉촉 묻혀서 울긋불긋 비벼서 꽃범벅, 둑에서 앓고 있는 백우(白牛)한테 내미니 독한 꽃내 눈 따가워 고개를 젓고 그 맛 좋은 칡순 때깔 나는 안들미 물오른 참쑥 키 크다란 미나리를 덩…

    • 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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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4〉

    안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4〉

    잘 지냈나요?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 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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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이름을 물었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3〉

    꽃 이름을 물었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3〉

    예전에는 가정이 출발점이라고 했다. 가정이 모여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가 모여서 세계가 된다고. 그러니까 가정은 씨앗 같은 거였다. 그걸 통해 우리는 멀리 나아가는 꿈을 꿨다. 멀리 갔다가 너무 힘들면 돌아오는 꿈도 꿨다. 지금은 가정이 출발점이 아니라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심정적…

    •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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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정이 나를[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2〉

    다정이 나를[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2〉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유독 그러하듯이뭘 잘못했는지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김경미(1959∼)

    •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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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기하고 싶다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1〉

    포기하고 싶다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81〉

    《옥상에 올라온 참새를 보고 놀라다가 아 너는 새지 너는 날 수가 있지, 라고 중얼거렸다살아 있다는 것을 잊고살아 있다너무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는나한테 전화해도 된다고 선생님이 말해줄 때고마웠다삶은 어디에나 있다삶은 어디에나삶은 어디에삶은 어디삶은동생이 비둘기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해줄…

    • 202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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